
맥주 피처가 욕실에 있은 지 한 달이 넘었다. 빈 병은 물론 아니다. 적은 양이긴 해도 맥주가 든 병이다. 그러면 목간 사이사이 한 잔씩 하나? 팔 닦고 한 잔 캬아~, 비누칠하고 또 한 잔 딸꾹~ ? 쳇, 아직 음주 목간의 단계까지 진화하지 못했다.
여름에 휴가 다녀간 아들과 집에서 맥주를 한잔하였다. 녀석이 지가 다 마셔줄 테니 피쳐를 사란다. 피처를 따서 둬 잔 마시자 둘 다 배가 불러 기권하였었다. 그렇다고 피 같은 술을 버린다는 건 죄 중의 죄라, <먹다 남은 맥주의 활용법>을 검색해 봐야지 하며 냉장고에 소중히 보관했다. 고백하자면, 무더운 어느 날 한잔 먹어보니 참 말오줌도 이거보다 나을 것 같아 포기하였다. 그래서 검색했다.
맥주로 가구를 닦으면 반짝반짝 윤이 나고→ 내 취미생활은 아니네.
가스렌지의 찌든 때가 말끔해지고→ 또 청소?
화초 잎을 맥주 묻힌 행주로 닦으면→ 화초라 부를 만한 물건이 음따.
색 바랜 옷을 맥주에 담가 헹구면 선명해→ 이번엔 손빨래까지? 색 바랬으면 내다 버려.
고기 볶을 때 부으면 잡내가 없어지고→고기 좀체 안 묵습니다아.
어째 맥주를 소비하자면 노동을 필요로 하는지, 뭐 팍 와 닿고도 쉬운 거 없나?
맥주로 세안을 하면 노화방지는 물론 잔주름, 탄력까지→ @@ 오옷! 바로 이거시야!. 탱탱탱, 지금 나에게 절실한 것!
그리하여 저 맥주 피처는 냉장고에서 욕실 선반으로 이동되었다. 갖다 놓고도 번번이 잊다가 어느날 한번 헹구어 봤다. 과연, 비눗기를 중화시켜 주는지 맥주 탄 물이 닿자마자 얼굴 피부가 확 부드러워졌다. 게.다.가. 한참 후까지 코끝에 감도는 보리효모, 맥아의 향기. 정말 설상가상이지 뭔가. 으흐흐. 향기를 오래 느끼려고 맥주를 많이 확 들이부은 두 번째는 얼굴이 좀 화끈거렸다. 따끔따끔 격한 향을 느끼긴 했다.
겨우 두 번 해 보았으니 효과를 입증하긴 요원하지 시푸다. 하지만, 오로지 세안을 위해 다시 맥주를 산다면 그땐 꼭 음주 목간까지 함시롱 보고서를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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