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날

드라이버

by 愛야 2012. 9. 20.

 

 

 

드라이버가 필요했다.

주방 서랍에서 드라이버를 찾아냈다.

그런데 하필 십자드라이버였다.

내가 필요한 건 일자드라이버였다.

내일 낮에 일 보러 나갈 때 철물점 들러 사야겠다고 머릿속에 초강력 본드로 입력한 후 잤다.

 

과연 다음날인 어제, 나는 잊지 않고 철물점에 들렀다.

아저씨 일자드라이버 주세요.

드라이버요? 여기 있습니다. 십자 쪽으로 되어 있네요. 빼면 일자 날이 있어 반대로 꽂으면 됩니다.

예? 반대로 꽂으면? (3초 멍~~) 그러면 우리 집 것도... 그렇겠네요....

아마 그럴걸요. 가서 보고 다시 오세요.

아저씨가 웃었다.

곁에 서 있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도 싱긋 웃는 걸 보니 나 빼고 다 안다는 것이다.

 

나는 바로 집으로 달려가 확인하고 싶어 염통이 다 근질거렸다.

하지만 일 때문에 나가던 차라 꾹 참아야만 했다.

일 마치고는 아까의 그 조바심을 다 잊어 이마트 찍고 집으로 왔다.

싱크대 위의 드라이버를 보는 순간 아 참, 드라이버.

나는 드라이버의 손잡이를 쑥 뽑았다.

오머오머오머, 반대편의 일자 날이 손잡이 속에서 나왔다!

드라이버값 이천 원 굳었다.

 

이 나이 먹도록 드라이버의 이중생활을 나 혼자 모르다니.

이 나이 먹고 이제야 그걸 알다니, 그래서 놀라는 꼬라쥬라니.

씁쓸했다.

내가 손에 쥐고서도 뽑아보지 못한 드라이버의 저 끝은 얼마나 부기지수일까.

 

 

 

 

 

 

 

 

'그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축제  (0) 2012.10.26
남몰래 흘리는  (0) 2012.10.22
이것이었다  (0) 2012.09.17
무수리 정신  (0) 2012.09.08
8월 끝  (0) 2012.08.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