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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짧은 하루

by 愛야 2013. 10. 17.

 

 

 

#1.

저녁이 되어서야 집 밖으로 나온다. 밤에라도 움직여 줘야지. 시장에 가서 두부와 무우를 산다. 오늘 밤은 춥다.

 

#2.

밤 8시, 운동화를 신는다. 최소한 40분은 걸어야 할 텐데, 중간에 싫증 나 그냥 돌아오지 말자고 결심한다. 바지를 입을 때 잠시 느꼈던 것은, 바지가 나날이 딱 붙어져서 종아리 알이 도드라지더란 것. 부모님에게서 받은 유전인자란 불가항력이다. 굵은 손·발목, 막강한 종아리, 차 없는 뚜벅이 생활 수십 년에 발목과 종아리는 절대로 매끈하게 가늘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근육이 발달하여 운동선수 같아졌다. 살이 빠져도 종아리나 발목은 꿋꿋하였다. 그랬던 것이 살이 찔 때는 왜 종아리도 덩달아 부피가 느는지, 형평에 어긋난다.

 

알찬 다리로 밤 산책하러 간다. 왼팔은 높이 흔들지만 오른팔은 덜 흔든다. 오른쪽 어깨가 아프니까. 하지만 못 견디게 아프지 않은 범위에서 최대한 흔들어 준다. 나는 아줌마들이 직각으로 팔 흔들며 심각하게 걷는 모습에 웃는다. 그들도 짝짝이로 흔드는 나를 보고 웃으면 된다.

 

#3.

밤 1시 30분이다. 아직 나는 잠들지 않는다. 서성거리다 생각난 듯 절여 놓은 깍두기를 뒤집어 준다. 나는 늘 오늘 자고 오늘 일어난다. 밤 12시 이전에 곯아떨어져 본 적이 언젠지 모르겠다. 뱀파이어 부럽지 않다.

 

텔레비젼을 끄면 어둠 속에서 정신이 더 말똥해진다. 본격적으로 생각을 하겠다는 태세다. 다시 텔레비젼을 켜서 소리를 자장가 수준으로 줄인다. 웅얼거리는 소리와 생각이 섞이며 뭉개진다. 온갖 허황된 패널을 데려다 놓는 종편 시사프로가 이럴 때 더 효과적이다.

 

눈 감으며 내일 할 일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아침이면 눈 녹듯 사라지는 계획이지만 망상이란 늘 즐거운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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