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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얄팍한 법칙

by 愛야 2014. 3. 5.

 

 

 


#1

3월이 되었지만 화사함은커녕 여전히 기모 올블랙, 해녀처럼 입고 기차를 탔다. 쇼핑백에는 김치통과 몇 가지 반찬통이 들어 있다. 아무리 칭칭 싸도 불사신처럼 냄새가 피어오르는 게 우리나라 반찬들이라 신경이 쓰였으나 대범해지기로 했다. 나는 아들이 사는 도시로 가는 중이다.

 

아들은 기숙사를 나와 원룸으로 이사하였다. 옵션으로 비치된 것 외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일도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작은 밥솥과 전자레인지는 여기서 구입해 배송지를 아들 주소로 하였고, 기타 자질구레한 물품도 며칠 전 택배로 보냈다. 부피가 큰 기타 등등은 아들에게 사라고 했으니 내가 직접 들고 가는 것은 오늘의 쇼핑백이 다였다. 이제 녀석은 인스턴트와 MSG에 몸을 맡기고 살아갈 것이다. 마침 MSG의 무해함에 대한 보도가 우습게도 위로가 된다.

 

기차에 오르고 곧 나는 안도했다. 일요일 정오 무렵의 객차 안에는 갖가지 냄새들이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맙게도, 내 옆 좌석의 청년이 햄버거 세트를 사들고 와 앉자마자 먹기 시작하였다. 햄버거와 감자 튀김의 초강력 냄새는 나의 미미한 반찬 냄새를 충분히 은폐시켜 주었다. 호주산 청정육우라고 큼직하게 쓰인 갈색 햄버거 봉지를 나는 다정한 눈길로 허용하였다. 

 

들녘이 재빠르게 스쳐 갔다. 그래, 기차의 창가는 느닷없이 봄이더란 말이지. 해마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 3월이 되곤 했다. 봄으로 들어서면 세상은 너무나 순식간에 뜨거워져 이내 들판으로 나가기 망설여졌다. 그러다 어느새 이듬해 봄이 되곤 했다. 내 평생 언제 관광버스를 한번 타 보나. 그 관광버스 통로에서 미친드끼 춤은 언제 한번 춰 보나. 혼자 씨익 웃는 사이, 기차는 창가의 봄을 만끽하기도 전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 놓았다.

 


#2

4시간 후 나는 돌아오기 위해 다시 기차역 대합실에 앉았다. 아들과 밥을 먹고, 필요한 물품 몇 가지 사주고 나자 할 일이 없었다. 참 데면데면한 모자인 우리는 시크하게 손 흔들어 안녕했다.

 

주위가 어두워졌다. 밤기차의 창가는 굳이 매력적이지 않다. 거울이 된 유리창은 들녘 대신 내 피곤한 얼굴만 보여주었다. 잠시 후 옆좌석에 산에 다녀오는 듯한 아저씨가 앉는다. 그는 배낭을 선반에 얹고 조심스레 좌석에 내려앉았다. 순간 흙냄새와 더불어 알코올의 냄새가 훅 끼쳤다. 아, 이런 젠장. 한 잔의 스멜이 아니잖아. 

 

원래 남이 마신 술 냄새를 맡기란 고역이다. 그러다가 문득 나에게 아까의 <반찬 쇼핑백>이 들려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내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느냐가 옆의 냄새를 반갑게 혹은 역하게 여기게 되는구나. 만약 내가 젓갈통을 들고 기차를 탔다면 이 아저씨의 술 냄새에 얼마나 안도할 것인가, 아흐 다롱디리.

 

대단한 대오각성이라도 한 척, 나는 찌푸려지던 미간을 느긋이 펼쳤다. 문제는 나여, 나. 내 손에 뭣을 들고 있느냐가 늘 논란의 원흉이여. 나는 아저씨를 향해 혀를 차는 대신 이어폰을 꽂았다. 이어폰은 마술 마개다. 이어폰을 콧구멍에 꽂는 것도 아닌데 이어폰을 꽂으면 청각 이외 모든 감각이 세상으로부터 아득히 멀어진다.

 

그런데 종착역까지 가면 내가 얼큰히 취할려나? 공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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