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11월, 식물들은 가장 작은 부피로 마르기 시작한다.
가을은 극과 극의 계절이 아닌가.
단풍으로, 열매로, 꽃으로, 제가 가진 최고의 순간을 펼쳐 보인 후 수직 강하, 남는 것은 바스러짐.
우리는 그들의 풍성함만 칭송한다.
꽃 특히 장미를 사면 그 생명이 미처 다하기도 전에 거꾸로 매달곤 했다.
완전히 시들어 버리면 예쁘게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꽃잎에 아직 꼿꼿한 힘이 있고, 세포에 물기가 남아있을 때가 딱 좋았다.
꽃은 자신이 가진 수분을 내주면서 다른 색으로 옮겨 갔다.
검어진 빨강, 창백해진 분홍, 바랜 노랑.
말라가며 드러나는 얼룩, 빳빳하게 저항하는 몸체, 그것을 보려고 꽃을 목매달았다.
아름다웠다, 꽃값을 셈하며 지갑을 만지작거리는 시간이 길어지기 전까지는.
이젠 장미를 말리기는커녕 사 본 적이 언제였나 기억이 안 난다.
덤불 앞에 한참을 서 있었지만 애초에 무슨 꽃을 피웠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오로지 마른 것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뿐.
친구가 밤 9시 넘어 전화하였다.
ㅡ 요즘은 쓸쓸해서 몬 살겠다. 도대체 愛야 너는 죽었냐 살았냐, 맨날 내가 전화해야 하냐, 이 무심한 것아.
ㅡ 넌 직장에 매인 잉간이니 바쁠 것이라 여겨 그렇지, 그런데 이 시간에 웬일인가.
ㅡ 흐흣, 여기 C시다. 교장 연수 왔다. 마음이 허해서 연수고 뭐고 안 들어온다.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ㅡ 지랄, 잘했다. 너라도 끝까지 가 봐야지. 잘 마무리하고 오너라. **에게도 안부 전해라.
교장이 되려는 여자도 쓸쓸하여 못 살겠고, 빈둥거리며 살 찌운 여자도 쓸쓸한 어투로 글을 쓴다.
사람은 평생에 걸쳐 자신을 고백한다고 했다.
그렇다, 고백 아닌 게 어디 있나.
글 그림 사진 연애 노래 입맛 투정 여행, 심지어 병도 육신의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기나긴 고백으로 나의 유수분이 조금씩 증발하면, 그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고 빈 채로 있다.
내가 놓아보낸 것의 대체품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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