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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흐린 밤

by 愛야 2017. 2. 5.

 

#1

모름지기 명절의 마무리는 비빔밥이다. 

밥 딱 두 숟가락에 나물 세 가지, 김가루, 마지막으로 계란후라이를 참하게 얹었다.

참기름 대신 들기름을 조금 뿌렸다.

마지막 고추장을 욕심내었던 게 문제였나, 비볐더니 너무 짰다.

밥 두 숟가락을 더했다.

밥이 뻑뻑해서 잘 비벼지지 않으려 했다.

탕국 건더기를 넣었다. 

다시 짜졌다.

상추를 뜯어 넣었다.

큰 그릇으로 옮겨야 할 지경이었지만 굳이 버텼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이 심하게 창대했다.

예정에 없던 부른 배를 안고 창대함을 후회했다.

 

#2

2017 이상문학상을 샀다.

표지가 다시 처음 스타일로 돌아와 있었다.

몇 년 동안 건너뛴 느낌이었으나, 책꽂이를 살펴보았더니 작년 한 해를 건넜을 뿐이었다.

고작, 겨우.

 

올해의 수상작가는 구효서였다.

믿을 만하지, 그라면.

그런데 그가 이제야 수상을 하다니 의외였다.

아, 그래, 생각이 났다.

김애란과 편혜영이 이어달리기하듯이 2013년과 2014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었다.

그때 나는 이거 뭐냐 니들, 나눠 먹기 하냐?

책을 덮으며 대단히 실망했었다.

그들이 친한 작가라든가, 비슷한 분위기라든가 하는 이유 외에, 문학적 중량감은 썩 없다는 편견이 나에게 있었다.

이상문학상이 뭐 그리 대단해서 하면 할말이 없지만.

 

작가는 45세 이상부터 될 수 있다고 법으로 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 이전에는 팝아티스트 정도의 명칭으로 삶을 수련하란 말이지.

감각으로 글을 쓰는 시절도 필요한 과정이겠지만, 글에서 내보일 깨달음을 얻으려면 그 정도 나이는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구효서의 글은 하나도 어려운 단어가 없다.

난해한 문장도 없다.

감각적이거나 모던하려고 애쓴 표현도 없다. 

잘 빨아 말린 흰 옥양목 같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도 자연스러웠다.

고답적이게도 제목조차 '풍경소리' '모란꽃'이라니.

 

그럼에도 어려웠다. 

언어는 읽긴 쉬웠지만 어려웠다.

구조적 이중서술시점은 차라리 이해되었고 신선했다.

그럼에도 어려웠다, 그 '소리'와 始原의 추구가 무엇인지.

 

이상문학상과 함께 권여선 작가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도 샀다.

이때의 안녕은 무엇일까, Hi가 아닌 Good-bye이길 바랐다.

아직 읽지 않아 모르지만,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다. 

 

#3

여기까지 쓰고 나는 술을 조금 마셨다.

늦은 밤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습관의 내 몸이 부대낄 줄 알면서도.

마침 또닥또닥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기상예보가 틀리지 않았다.

밤 늦게 전국적으로 눈. 비가 오겠습니다.

윗지방에는 눈, 아래에는 비일 테지.

흘낏 본 시간은 밤 11시 20분,  잠이 올 리 없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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