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3월이 되었군요.
물론 어제부터 3월이었으나 우짠지 어제는 기냥 삼일절로만 생각되어 오늘부터 진짜 3월인 듯하네요.
아이들도 개학이라 긴긴 겨울로부터 빠져 나온 기분이예요.
겨울이 싫었냐구요?
그럴리가요.
도무지 따뜻히 데워지지 않는 내 손만큼 쌀쌀맞은 기후도
쨍하니 파랗기만 한 겨울하늘도
하다못해 칼날같은 바람도
사랑하지 않은 겨울의 모습은 아무 것도 없어요.
오히려 이렇게 희뿌연 봄날이 나는 견디기 힘들어요.
봄비도 꽃샘추위도 나를 누추하게 만들지요.
봄은 고양이라는, 그리 똑 떨어지는 詩가 아니더라도 봄은, 그래요.
치열한 삶을 잠시 몽롱하게 만들어요.
가끔 공허히 텅 비는 눈을 눈치채지 못했나요?
보고 있으나 보고 있지 않은 눈 말이지요.
하지만 곧 피어날 세상의 꽃들로 잠시 행복하게 취해 볼 생각이예요.
아 참, 어제 나간 길에 꽃화분을 하나 꼭 사야지 했는데 또 잊었네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서도 이리 망각하다니, 쓴웃음이 날 밖에요.
흔히들 새 해에...새 봄에...새 학년에...하며 새 결심과 계획들을 세우더군요.
나요?
난 그런 것에 소질없는 줄 여적지 몰랐어요?
그런데 굳이 결심이라 이름 붙이는 건 아닌데요, 그저 이런 생각이 슬며시 들어요.
무디게 살자 싶어요.
자잘한 이파리나 잔가지처럼 세상을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에도 일일히 흔들리며 아파하기 고단하네요.
결국 내가 나를 '살아내는' 방법이란 특별난 것이 아니라 '무딤의 미학'을 알아야 한다 싶어요.
지나간 상처든 다가올 혼란이든 무심히, 누구나 어느 인생이나 다 그렇다 여기면서 기다리면
남은 생애도 한번의 들숨 날숨처럼 순순히 지나가겠지요.
가끔은 사랑에 대해서도 너무 무디어 매정하게 마음을 뚝 잘라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요.
말은 이렇게 번듯하게 하지만 기실 세속적인 인간이라, 내가 나를 할큄에 종종 진저리가 나요.
그러다 문득 아이고, 무딤이고 지랄이고 내 마음이나 편히 살자 싶어
모든 것을 마음으로부터 다 뜯어내 땅에 미련없이 패대기치기도 해요.
well-being 하려는 마음보다 더 고수는 well-貧이라 했나요?
무디고 느리게 살면 그리 될까요?
어쩐지 그런 경지는 도달하기 두렵군요.
도중에 변심할 것이 분명한 나를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하,그러게 난 속물적인 인간이라고 하잖아요.
이것도 역시 스스로를 할퀴는 고백이라구요?
여전히 직관이 뛰어나시네요.
아아, 너무 오래 창가에 서 있었어요.
감기기운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이젠 나가 볼 시간이네요.
오늘은 꽃화분을 잊지 말아야 할텐데, 자신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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