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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Y에게

by 愛야 2006. 3. 2.

드디어 3월이 되었군요.

물론 어제부터 3월이었으나 우짠지 어제는 기냥 삼일절로만 생각되어 오늘부터 진짜 3월인 듯하네요.

아이들도 개학이라 긴긴 겨울로부터 빠져 나온 기분이예요.

 

겨울이 싫었냐구요?

그럴리가요.

도무지 따뜻히 데워지지 않는 내 손만큼 쌀쌀맞은 기후도

쨍하니 파랗기만 한 겨울하늘도

하다못해 칼날같은 바람도 

사랑하지 않은 겨울의 모습은 아무 것도 없어요. 

 

오히려 이렇게 희뿌연 봄날이 나는 견디기 힘들어요.

봄비도 꽃샘추위도 나를 누추하게 만들지요.

봄은 고양이라는, 그리 똑 떨어지는 詩가 아니더라도 봄은, 그래요.

치열한 삶을 잠시 몽롱하게 만들어요. 

가끔 공허히 텅 비는 눈을 눈치채지 못했나요?

보고 있으나 보고 있지 않은 눈 말이지요.

 

하지만 곧 피어날 세상의 꽃들로 잠시 행복하게 취해 볼 생각이예요.

아 참, 어제 나간 길에 꽃화분을 하나 꼭 사야지 했는데 또 잊었네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서도 이리 망각하다니, 쓴웃음이 날 밖에요.

 

흔히들 새 해에...새 봄에...새 학년에...하며 새 결심과 계획들을 세우더군요.

나요?

난 그런 것에 소질없는 줄 여적지 몰랐어요?

그런데 굳이 결심이라 이름 붙이는 건 아닌데요, 그저 이런 생각이 슬며시 들어요.

 

무디게 살자 싶어요.

자잘한 이파리나 잔가지처럼 세상을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에도 일일히 흔들리며 아파하기 고단하네요.

결국 내가 나를 '살아내는' 방법이란 특별난 것이 아니라 '무딤의 미학'을 알아야 한다 싶어요.

지나간 상처든 다가올 혼란이든 무심히, 누구나 어느 인생이나 다 그렇다 여기면서 기다리면

남은 생애도 한번의 들숨 날숨처럼 순순히 지나가겠지요.

가끔은 사랑에 대해서도 너무 무디어 매정하게 마음을 뚝 잘라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요.

 

말은 이렇게 번듯하게 하지만 기실 세속적인 인간이라, 내가 나를 할큄에 종종 진저리가 나요.

그러다 문득 아이고, 무딤이고 지랄이고 내 마음이나 편히 살자 싶어

모든 것을 마음으로부터 다 뜯어내 땅에 미련없이 패대기치기도 해요.

 

well-being 하려는 마음보다 더 고수는 well-貧이라 했나요?

무디고 느리게 살면 그리 될까요?

어쩐지 그런 경지는 도달하기 두렵군요.

도중에 변심할 것이 분명한 나를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하,그러게 난 속물적인 인간이라고 하잖아요.

 

이것도 역시 스스로를 할퀴는 고백이라구요?

여전히 직관이 뛰어나시네요.

아아, 너무 오래 창가에 서 있었어요.

감기기운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이젠 나가 볼 시간이네요.

오늘은 꽃화분을 잊지 말아야 할텐데, 자신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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