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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러지 마라...

by 愛야 2007. 6. 16.

 

추억에서                     

 

                                    ㅡ박 재 삼

 

晋州 장터 생魚物전에는
바다 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 시리게 떨던가 손 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晋州南江)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별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아들이 박재삼의 "추억에서"를 묻는다. 엄마 책꽂이에서 박재삼의 시집을 찾아 보아라 했더니 표지의 한자 때문에 얼른 찾지 못한다. 무식한 넘. 내가 가지고 있는 그의 시집 "千年의 바람"에 수록된 것과 인터넷에서 검색한 것이 약간 다르다. 내 시집에는 4연에 있는 '오명 가명'이 없다. 초판 발행이 75년도, 중판이 82년이다. 다시 첨삭 손질하여 다른 시집을 묶어 낼 때 수록된 것일 수도 있다.

 

요즘 아들이 갑자기 시에 심취하여, 이육사를 찬양하고 김광균을 즐긴다. 김기림은 지나치게 한자와 영어를 사용한다고 투덜거린다. 교과서에 실린 이육사의 "광야" 중에서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부분이 제일 좋단다. 소설보다 시가 더 좋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몇 마디 물어 보면, 느낌상 좋다는 것일 뿐 깊은 이해는 없었다. 아이의 나이를 생각하면 시를 따지고 분석하기 전 어쩌면 가장 순수한 단계일 수 있다. 요즘 학습참고서는 시와 소설을 갈갈이 분해해서 살 바르고 뼈 추려 아이들이 잘 먹게풀이를 곁들여 내놓는다. 대학입시와, 그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친절한 출판사가 그렇게 만들었다.

 

소설 원문을 읽고 시를 감상하기엔 아이들은 시간이 없고 편리에 길들여졌다. 감상이 아닌 논술 대비로 문학을 읽는 우리 아이들이다. 물론 바르게 읽기만 하면사 논술대비든 감상이든 내면의 양식으로 축적되겠지만, 벼락치기 공부하듯이 문학을 읽는다면 지식 외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아들은 국문과를 가고 싶다고 하다가 급기야 국어 선생님이 되겠다네. 불과 얼마 전까지 과학을 찬양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나 보다. 단지 예상만큼 수학 성적이 잘 안 나와 방향을 문과로 튼 듯한 혐의가 짙다. 진로에 아직 소신이 없는 건 그럴 수 있지만 녀석의 두리뭉술한 적성이 이럴 땐 불리하다. '좋아하는 것'이 꼭 '잘하는 것'과 일치하란 법이 없으니 말이다.
국문과, 국어 선생님...? 흐억, 으째야 쓸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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