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주말 같지 않아졌다. 토요일 오후에만 가능한 일이 몇 건 생기다보니 그렇다. 금요일부터 좌악 쉬어줘야 주말 기분이 나고 기력도 회복되곤 했는데, 토요일 늦게 집에 오니 이건 주말이 주말이 아니다.
쉬는 날이라고 집안일까지 쉰다는 건 아니다. 빨래하고 장 보고 병원도 가고 목간통 가고 세금도 내고 잡다구리한 주변 일을 해야 한다. 사는 게 우째 이리 복잡다난 울트라 스펙타클하다냐.
아들은 평일 학원 갈 시간이 안 나니 주말반을 신청하였다. 토요일 오후부터 밤까지, 일요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학원에서 산다. 수업과 공부는 동일한 게 아니지만, 내 아들눔은 수업 들으면 일단 공부했다고 스스로 너무 대견해설랑 집에 오면 절대 자기공부 안한다. 주말을 학업에 매진하며 보내고 월요일 학교 가려면 입이 댓자나 나온다. 녀석도 주말이 없다는 말이다.
툴툴대는 녀석을 보는 맘도 편치 않다. 위로 차원에서 용량 적은 mp3를 바꿔졌다. 지난 여름 인터넷으로 구입한 mp3의 액정이 부숴졌을 때 엄마가 나중에 괜찮은 것으로 사 줄게 약속한 것을 잊지도 않고 재촉이다. 쓰잘데기 없는 기억력 하나는 쓸 만하다. 음악만 나오는 것으로 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굳이 동영상 되는 모델로 한다. 학교에서 동영상이나 DMB 보다가 휴대폰처럼 압수당하지 않으려나 싶다. 말도 참 안 듣는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지긋지긋하다. 지난 주에는 일처리를 명쾌하게 해 주지 않고 미루는 어느 사람으로 내내 기분이 께름칙하다. 그녀와 관련된 일이 끝날 때까지 그럴 것이다. 이젠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도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대충 감이 잡히는데, 그 사람의 느릿하고 흐린 목소리를 수화기 너머 듣고 끊으며 영 찜찜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내 기분을 떵 밟은 듯 만든다. 사람을 이용하거나 자신이 편한 대로 약속도 어겨 버린다. 정말 싫고 피곤한 타입이다.
헝크러진 실타래 같은 심사를 아무에게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내 일일 뿐이니까 그렇다. 내 발에 묻은 떵을 다른 사람에게도 묻혀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난 왜 이리 착한지 정말...
사회에 나와 자립적으로 살아오면서 여태 한 일이라곤 세상의 지극히 일부분만 보고 겪고 지금도 그러고 산다. 이 일마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지만 아직은 일상을 끊어버릴 고리를 찾지 못하였다. 일 주일 단위로 반복되는 일상의 채찍을 아직은 더 견뎌야 한다.
입 다물고 살 수 있는 길은 동굴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아마 쑥과 마늘도 안 먹고 잘 견딜 것이다.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아 한 쪽 눈 깜박할 새 지나갈 하루, 한 달, 일 년 사계절이니까 먼 산 몇 번 바라보는 사이 잘 지나갈 것이다. 깊은 산사의 부엌 일자리 없나 알아볼 일이다.(소개 부탁합니데이)
고립되는 것이 두렵진 않다. 그 속에서 평화만 찾는다면. 체감하는 진정한 평화는 어차피 각자 일인분씩이다. 절대로 서로 공유되지 않는 것이 행복의 기준 아니던가.
주말 같지도 않은 일요일의 해가 서산으로 넘어 간다. 밥이나 하자. 어제 늦게 먹은 칼국수 with 김밥이 오늘 아침 얼굴을 달덩이로 만들었지만 커피만 홀짝거릴 순 없다. 아, 손 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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