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다가 말다가 퍼붓다, 해가 났다가 사라졌다 반복한다. 나도 창문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한다. 하루 종일 뒤통수를 베개에 짓이기며 자다가 말다가 반복한다. 같은 생각도 하고 또 반복한다.
늦은 밤에 드라마를 우연히 본다. 내가 보았을 때는 드라마가 거의 끝나가는 중이었다. 아니 끝이다. 주인공이 자살을 해버린 후부터 내가 본다. 그러니 끝이다. 남자 주인공의 모습을 여자 주인공이 추억한다. 어딘가 병적으로 보이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에게 말한다.
"살아있는 것은 다 변한다. 변치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이유가 다다. 하지만 죽어야 하는 이유는 수백 가지다. 죽으면 시간은 정지하고 그 정지된 시간 속의 내 사랑은 영원히 당신에게 남는다. 그러므로 우리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보고 싶으면 눈을 감고 손으로 허공을 만져라. 나를 느낄 수 있다. 그리워 하면 볼 수 있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순간 온 세상은 서로로 가득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런 뜻이다. 주인공이 죽으며 남기는 대사이니만큼 작가의 심혈이 보인다. 사랑법의 정답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배우도 혼신을 다해 연기하지만 목숨을 버리는 변명치곤 지극히 고답적하다. 건조하게 말하자면, 친구를 죽인 양심과 조여오는 수사망을 피해 죽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인공은 죽는 이유를 최대한 멋있게 붙인다. 사랑 때문에 죽을 놈은 이제 세상에 없다. 다만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수갑을 차고 감옥에 가야하는 처지가 쪽 팔려서 죽는 놈은 가능하다.
그런데 과연 죽음이 사랑의 변질을 막아줄까. 사랑하던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과 나누던 사랑마저 미이라처럼 보존될까. 글쎄다. 가령, 80년도나 88년도나 2006년도에 나누던 사랑이 그대로 정지해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 시점을 이미 흘러와 버렸다. 다시 되돌아 갈 수가 없다. 갈 수 있다면 추억이란 도구뿐이다. 추억은 기억일 뿐 더 이상 사랑은 아니었다. 더구나 희미해져 가는 기억이라면야. 죽음이나 이별이 사랑의 방부제가 될 수 없다.
그 자리에 다시 가 만지니 폭삭 재로 남았다는 詩처럼, 일상을 지배하지 않는 사랑이 무슨 의미있을까. 역할이 없는 사랑은 더이상 나에게 작용하지 못한다. 흡사 걸린 그림같다. 멈춘 시간 속의 멈춘 사랑도 변한다. 흘러간 사랑은 사라지고 사라지다 급기야 홀연히 날아가 버린다. 어느날부터는 까맣게 그 혹은 그녀를 잊고 가슴의 통증도 깨끗이 사라진다.
여주인공은 1년 후 말한다. 요즘은 너무 바빠서 그를 생각 못했다고....여주인공은 가끔, 아주 가끔 죽은 연인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게 뭐 어쨌다고? 그녀는 그가 없는 세상에 적응한 후 다시 새로운 사랑을 만날 것인데. 멋있게 죽은 놈만 억울하다. 지금 내 곁의 그 혹은 그녀만이 치열한 내 사랑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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