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웃에 6살 송희와 4살 재형이 남매가 있다.
아이들은 늘 뽀얗고 통통했고 깔끔한 젊은 엄마는 아이들을 잘 건사했다.
얼마 전, 송희의 왼팔에 파란 깁스가 올려져 있었다.
재형이가 소파에서 뛰어내렸는데 하필 누워 있던 송희의 팔 위에 육중한 궁둥이가 착륙했다나.
송희의 팔꿈치뼈가 세 조각쯤으로 부러졌고 전신마취까지 하고 수술을 했단다.
병원에 며칠 입원했다가 불편해서 퇴원했다니 그 염천에 고생이 많았겠다.
내가 아이고, 송희 얼마나 아팠니, 여린 몸을 안아주며 위로했다.
송희는 자신의 사고를 막 자랑했다.
그러자 원인 제공자인 재형이 녀석도 어디 위로받을 상처 없나 제 다리 구석구석 찾는다.
급기야 다 나은 모기물린 딱지를 내보이며, 여기여기 모기 물었어요 구슬프게 말한다.
매를 맞아도 시원찮을 판에...하하.그려, 너도 고생했다, 엄마 없어 할머니 손에 며칠 지냈으니.
재형이와 송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논다.
송희는 오른손만으로 책장이 잘 안 넘겨지자 입술까지 동원한다.
우량한 재형이는 여전히 의자에서 뛰어내리고 넘어지고 누나를 밟고 가기도 한다.
그러면 누나는 눈을 치켜뜨고 아직 아기티를 못 벗은 재형이를 혼낸다.
내 아들은 아직 한번도 뼈를 부러뜨리고 깁스를 한 적은 없다.
형제와 뒹굴고 노는 게 아니라 외롭게, 곱게 컸구나 싶은 마음이 난데없이 왜 드나.
2.
김치 공장을 하는 지인이 김치 5킬로그램을 추석이라며 보냈다.
참 고맙다.
내가 김치 사 먹는 줄 알고, 또 담가 봤자 실력이 거시기하다는 걸 아는 것이다.
김치를 냉장고에 넣으려다가 한 줄기 손으로 쭉 찢어 고개를 뒤로 딱 제끼고 먹어본다.
칼로 얌전히 썰지 않고 요렇게 먹는 게 더 맛있다는 사실은 한국사람은 다 알거다.
찢은 김치를 걸친 밥숟가락을 입 속으로 밀어넣은 후 남은 김치 뒷부분은 이로 끊어 주는 센스!
그리고 손가락을 쪽 빨아주는 마무리!
게걸스런 그 일련의 과정에서 식욕은 더욱 샘솟고 김치맛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최고의 맛이 되곤 한다.
김치 길게 찢어 먹는 것에 대해 우리 형제들은 갈증이 좀 있다.
아버지께선 유난히 밥 먹는 태도에 대해 규제가 많으셨다.
어느날 우린 김치를 손으로 찢어 밥을 먹다가 아버지 눈에 딱 걸렸다.
물론 기꺼이 동참한 엄마도 함께였는데 사실은 엄마가 처음 가르쳐 주었지 싶다.
아버지는 도대체 칼로 보기좋게 썰어 먹을 일이지 그게 뭐냐는 거다.
썰어 먹는 김치나 찢어 먹는 김치나 똑같은 것인데 왜 굳이 보기 흉한 꼴을 하느냐는 것이다.
기분학상 이게 더 맛있으니까 하는 감성적인 변명은 소용없는 일이므로 우린 밥 먹다 말고 묵묵히 일장 훈시를 들었다.
아버지의 훈시가 시작되면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이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비결임을 우린 체험터득하였으니까.
아버지가 출장 등으로 집 비우시는 날에는 기다렸다는 듯 밥상 앞이 왁자지껄 하였다.
밥그릇 살살 흔들어 밥 거꾸로 뒤집기나 김 따먹기 하느라 밥 먹는 것도 놀이였던 시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까탈스런 아버지의 밥 드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는 것이다.
숟가락에 밥을 뜬 후 잘 다독거려 흩어지지 않게 하던, 젓가락으로 밥을 뜨지 않으시던, 몸을 수그려 숟가락을 마중하지 않으시던... (결혼 후 유난히 밥상에 엎어져 먹는 남자도 있다는 걸 알았다)
가끔 아들에게 강조하는, 고급하게 밥먹기의 모델이 아버지라는 사실에 나는 깜짝 놀라곤 한다.
잘차린 밥상에서도 허겁지겁인 부자가 있고, 조촐한 밥상에서도 고급한 사람이 있다.
그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먹을 것을 취하는 인간의 품위 문제라고, 나는 아들에게 겁나게 폼나는 말을 한다.
아픈 엄마 대신 거의 남자주부에 가까운 아버지께서 요즘도 그리 드실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다만 아무도 보는 이 없으니 난 김치를 찢어 입을 딱딱 벌리며 밥 한 공기를 다 먹었을 뿐이다.
물론 손가락도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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