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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罪, 바로 罰.

by 愛야 2008.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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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罪

지친 잠은 몸뚱이를 땅속으로 끌어내렸다. 그 잠 속으로 전화벨이 찾아들었다. 버려둔다. 질기게 울렸다. 손을 뻗어 머리맡을 더듬었다. 손전화기를 간신히 찾았을 때 전화는 울기를 그쳤다. 발신지는 어맛, 친정이었다. 순간 어줍잖은 내 머리가 돌돌돌 굴렀다.

 

친정 아버지께서 오전나절 전화하는 일은 좀체 없다. 내가 일찍 일하러 나갔다고 여기시기 때문이다. 그럼 뭘까. 아버지가 내게 전화하시는 일은 대개 뻔하다. 당신이 산에 가야 하니 엄마를 간호할 나와 스케줄을 의논하시려는 게다. 하지만 지지난 주말 산행을 다녀오셨고 다음달 산행일은 아직 멀었지 않냐 말이다.

 

그 사이 단풍구경 가실 일이 생기셨나? 엄마가 문밖 출입 못 하신 지 십수 년인데 당신 혼자 놀러 다니고 싶으실까. 분명 부부는 異심異체다. 아님 多심異체든가. 친정 다녀온 지 겨우 일 주일하고 며칠인데 이번 주에 또 가면 너무 피곤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 아버지가 미워져서 가고 싶지 않다. 뭐라고 둘러댈까...헌이 시험? 감기 몸살? 연수 간다? 오호, 이거 좋은걸! 주말에 연수가 있어서 갈 수 없다고 하자. 공적인 일이니 명분도 서고 아버지께서 나무랄 일도 아니니 딱이닷.

 

거절할 핑계거리를 골라놓고 나는 친정에 전화를 걸었다. 

"아부지, 아까 전화하셨네요? 몬 들었어요." 수요일도 아닌데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응, 너 위내시경 해 봤나?"

"아니, 아픈 곳도 않는데 힘든 내시경을 왜 해요?"

"너 지난 번 왔을 때 너무 말랐던데 내시경 함 해봐라. 원래 병은 소리없이 시작된다" 

"나 체중 별로 안 줄었어요. 조금 빠졌지만 나이드니라고 얼굴부터 초췌해 보여 그래요."

"얼굴뿐 아니고 궁뎅이 살이 항개도 없던데 멀. 진찰 받아보라니까?"

"아부지는...난 원래 궁뎅이가 납작하고 말랐자나~"

"어디 그랬노? 통통하고 그랬지."

참 언제적 전설을 회상하고 계신 거야?

"아부지 그것땜시 전화하셨었어? "

"하모, 하여튼 건강 잘 챙겨라. 걱정이다."

"알았으요. 조금만 아파도 바로 병원 갈게여."

 

막내 딸내미, 머쓱하였다. 거짓말로 아버지를 거절하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었지만 부모의 염려를 오해한 죄 어쩔거나.

 

#2. 罰

아들의 시험이 드디어 끝나는 날이었다. 걱정하던 수학시험이 있는 날이라 나도 결과가 기다려졌다. 시험이 오전일과로 끝났을 텐데 아들은 오후 4시가 넘도록 오지 않았다. 으례히 그랬듯이 애들끼리 피시방이나 영화관이나 노래방으로 세러머니하러 몰려 갔을 것이다. 시험 끝났다고 지들끼리 노는 것도 요즘 아이들의 문화다. 시험치는 일이 평범한 일상이던 우리들은 세러머니를 하자고 들었으면 매달 수없이 했을 것이다.

 

아들은 5시가 거의 다 되어 왔는데 분위기가 묵직하였다. 현관 들어서는 순간 急우울모드로 가방도 픽 던지고 허벌나게 지친 척, 한 마디 말도 없이 제 방으로 들어갔다. 내 온몸의 피가 싸악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수학 어떻게 쳤니? 못쳤어? "

"응."

"얼마나?"

"아, 몰라. 안 매겼어." 

"반타작 했냐?"

"그건 넘겼으.."

"연락도 없이 왜 이리 늦었니, 놀러 갔어?"

"응, 애들이랑 피시방, 그리고 노래방."

"그렇게 치고도 놀 기분이 났어?"

"그러니까 빨리 왔지" 

기분 안나서 빨리 온 거란다. 피시방과 노래방에선 우울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럼 어디까지 갈라 그랬는데? 이 말은 그냥 삼켰다.

"밥은?"

"햄버거 먹었더니 배 고파..." 

참 골고루 이뿌기도 하지...

 

솔직히 말하면 밥도 주기 싫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시험 못쳤다고 줘 팬 일은 여태 없었다. 시험 결과에 대해 꾸중도 안하는 편이다. 시험치기 전에는 잔소리해도 다 쳐버린 시험결과를 두고 혼내진 않았다. 다만 자신의 결과를 보고 꼭 피드백을 하라고 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어떤 점이 실수였는지, 다음 시험때의 반영점을 찾으라 했다. 그리고 과연 자신의 최선이었는지도 물어보라 해 왔다.

 

이젠 그런 고상한 4차원적 말도 하기 지쳤다. 소 귀에 들려주는 경은 외계어다. 그냥 간단무식 手작업으로 한 대 쥐어박고 시험마무리를 했으면 싶었다. 지 인생 지가 꾸려가겠지. 일류대학 가서 일류백수 안 되란 보장도 없다. 하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만 지금 노력한다면 그 결과가 설령 나쁘다 해도 내 아~무 말도 않을 텐데...아들이 야속하고 또 야속했다.

 

쥐어박는 대신 된장찌개 끓이고 꽁치 구웠다. 상 다 봐두고 나는 나갈 준비를 하였다.

"아들, 밥 먹어라. 꽁치도 꼭 먹고."

"응." 

"왜 그리 수학이 안되는지 곰곰 생각해 봐라."

"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에~" 

"누가 너더러 공부 안 했다고 했냐? 했는데도 점수가 안 나오니 공부법을 점검해 보란 말이다."

"아, 몰라!!"

이걸 확, 똥 싼 넘이 성낸다더니 내가 좋게 대해주니 자기반성이 통 없네....참자, 휴우, 도 닦자.

 

요즘은 어둠이 빨리 온다. 어둑한 골목길을 걸어나오는데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한 발 떼기도 힘이 들었다. 말은 태연하게 했지만 자식이 성적 안 오른다는데 기운 펄펄할 사람이 어디 있나. 더구나 반성의 기미조차 없는 뻔뻔한 철가면 아들을 둔 처지가 아닌가. 나는 길을 걸으면서도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실망감에 세상이 시들하고 도무지 의욕이 없었다.

 

아침에 부모의 마음을 오해한 벌을 그날 저녁 당장 자식으로부터 받은 셈이다. 사람 사는 일이 이렇게 빤하다. 위로 보면 내가 자식, 아래로 보면 내가 부모. 그 사이의 나는 그러나 깨닫는 게 없다. 언제나 나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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