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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멋진 사람들

by 愛야 2008. 12. 6.

1. 도전

얼마 전 퀴즈 프로에 나온 중년의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모든 출연자들을 다 무찌르고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번번이 느끼는 것이지만, 그 퀴즈프로의 파이널 라운드는 앞 라운드에 비해 지나치게 난이도가 높아서 영웅 배출을 방해하기 위한 방송국 측의 공작처럼 보였다.

 

방청석엔 그의 가족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참한 아내는 고왔고 두 자녀는 착해 보였다. 부디 퀴즈문제를 다 풀고 상금도 두둑히 챙겨가기를 바랬지만 아쉽게도 그는 퀴즈영웅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참 장하였다. 그는 암 투병 중이었다.

 

병과 맞서는 용기와 힘을 얻기 위해 퀴즈에 도전하였다 했다. 아울러, 예상보다 빨리 두고 떠나야 할 두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노력하는 모습을 유산으로 새겨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의 실패하였으나 성공한 도전은 그래서 눈물겨웠다.

 

사는 것이 다 도전이다. 아침에 눈 떠 방문 밖으로 한 발 내딛는 것부터 도전이다. 암 투병이든 아니든 어차피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사람인데 순간순간이 도전이다. 비중의 중량이나 중요도를 따질 필요는 없다. 하찮은 한 순간으로 목숨을 잃는다면 그 하찮은 한 순간은 그 사람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으로 변하는 것이니까.

 

도전에는 한계가 없다. 나이, 환경, 돈... 돈이 있어야 도전한다고? 돈을 필요로 하는 일에 도전한다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거지로 전락하는 것, 노숙자가 되어 떠도는 것, 사랑을 위해 주변을 버리는 것, 주변을 얻기 위해 사랑을 버리는 것, 쓸쓸히 살아내는 것도 마음먹기 어렵기론 거창한 도전과 진배없다.

 

도전이란 어쩌면 "견디는" 것이 아닐까. 도전이란 자고로 명분 좋고 폼나고 열정적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버린다면 우리는 참 자유롭게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구걸이야말로 가장 큰 도전이라는 말이 수긍이 된다. 가장 큰 자유를 얻으니까.

 

얼마 전 뚫은 내 귓볼도 그렇다. 바늘침에게 살을 맡기며 나는 10%의 자학심리와 10%의 반항심과 80%의 도전감을 느꼈다. 하핫, 도전과 好戰을 동일시하진 않는다. 어제는 날씨가 말할 수 없이 추웠다. 바람도 날아갈 듯 불었다. 그래도 아가씨들은 벌벌 떨지언정 짧은 치마 아래 레깅스였다. 도전이지 뭔가.

 

2. 명언

경기침체로 허리띠를 너무 심하게 졸라맸는지 옷이 다 헐렁했다. 원래 옷을 느슨하게 입는 스타일이었기에 이젠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새로 사기보다 줄여서 입는 게 모범답안이다. 바지 둘 치마 하나를 수선집에 맡겼다.

 

맡긴 옷을 찾으러 간 날은 비가 온 다음날이었다. 정말 겨울 같았다. 비가 와서 은행잎이 다 떨어졌지요? 계절 사이에는 꼭 이렇게 비가 있다니까요. 나는 수선집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여자가 말했다.

 

비만 와서는 안돼요, 바람도 같이 불어줘야 계절이 지나가요. 비 젖은 나뭇잎이 나무에 붙어있다가 바람이 불어주니 그제야 우수수 날아가데요. 같이 일어나야 이루어지고 다 지나가져요....그녀는 독실한 불교신자다. 부처님을 믿고부터 마음의 안정을 얻어 몸무게가 8키로 늘었다고 했다. 그 무게가 모두 중부지방에 실려 보였는데 내 기억 속의 그녀는 언제나 그 정도 덩치였던 것 같았다.

 

옷을 입어 보고 벗으며 귀찮아 투덜대는 나에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옷을 줄여 입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르쥬? 그녀는 명언을 참 많이 알고 있다. 근데 나도 부처님을 믿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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