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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詩

나희덕, <기억의 자리>

by 愛야 2006. 11. 23.

 

 기억의 자리

                           

                                         ㅡ나희덕

어렵게 멀어져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까봐
나는 등을 돌리고 걷는다.

추억의 속도보다는 빨리 걸어야 한다.
이제 보여줄 수 있는 건
뒷모습뿐, 눈부신 것도
등에 쏟아지는 햇살뿐일 것이니
도망치는 동안에만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의 어귀마다
여름꽃들이 피어난다,
키를 달리하여
수많은 내 몸들이 피었다 진다.

시든 꽃잎이 그만
피어나는 꽃잎 위로 떨어져내린다.
휘청거리지 않으려고

걷는다, 빨리, 기억의 자리마다
발이 멈추어선 줄도 모르고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온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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