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을 헛딛다
ㅡ이은규
언젠가 당신은
얇은 담요 사이로 그녀의 맨발을 본 적 있다
기어이 가는 봄날의 모란 꽃잎처럼
살에 감기는 바람결에도 色(색)을 잃을까, 야위어갈까
당신의 애를 태우던 그녀의 살빛
살이라는 말처럼 연한 발음이 있을까
또 발이라는 말처럼 시린 말은 어떻고
이국의 風俗史(풍속사)에 모란꽃 아래서의 죽음이야 말로 도도한 풍류라는 문장이 있다 그날의 풍류는 그녀 발목에 혀의 문장을 새겨넣은 일, 꽃의 씨방처럼 부풀어오른 건 그녀였을까, 그녀라는 方向(방향)으로 흐르던 당신이었을까
지금 당신은 그녀의 걸음걸이를 추억한다
또옥 똑, 봄의 운율로 걷던
그녀는 살아서 나비의 後生(후생)이기도 했을 것
종종 바람에 체한 나비처럼, 헛딛는 때가 있어
그 모란 줄기 같던 발목을 삐끗하기도 했던 그녀
당신은 호, 하고 빚어낸 숨결을 불어넣어
그녀 생의 浮氣(부기)를 다독여주곤 했었다
마침의 문장에서까지 耽美(탐미)를 반성하지 않았던 그녀
비단 습신에 모란무늬를 수놓아 신겨달라
비단에 핀 모란이 얼마나 색스럽다 한들
그녀의 시린 발은 어쩔 수 없겠다
모란 香(향)에 눈이 밟혀 발을 헛디디면 어쩌나
애면글면하는 날들이 당신의 이력이 되겠다
발음되지 못한 문장들은 바람의 습기가 될 것
습신의 끈이 봄꿈처럼 스르르 풀린다 해도
고쳐 매줄 수 없는 길에 서 있을 그녀
돌아오는 길을 지우며 걷는 걸음의 배후는
피는 법을 잊은 꽃의 배후처럼, 허공이 알맞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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