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계속 바람 불고 추워서 옹송그리고 다녔다. 난 이래서 봄이 증말 싫다. 추워도 겨울외투나 털옷 못 입고 벌벌 비굴모드로 무릎 떨어야 된다. 머리카락은 엉켜 하늘로 치솟아서 귀옆에 꽃만 꽂으면 영락없는 몰골이기 십상이다.
오늘은 거짓말처럼 날씨가 포근하였다. 배가 슬며시 고픈 낮 12시, 아이디어처럼 국수 생각이 반짝 났다. 그러고 보니 국수는 어제밤부터 먹고 싶었다. 어제밤, 자려고 누운 야심한 시각에 배가 꼬르륵 꼴꼴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냈다. 빨갛게 비빈 국수가 머릿속을 몇 번 회전하였다. 하지만 이미 자정을 넘은 시간, 내 배를 위해 수고할 뜻이 전혀 없는 나는시냇물 음향효과를 묵살하였다. 대신 침 흘리며 내일을 기약했다. 내일 점심에 요렇게조렇게 비빔국수를 맹글어 먹어야지. 소스며 국수의 양까지 구체적으로 그리다 잠이 들었다.
그러나 자고 깬 나는 어제밤의 그 절실했던 플랜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내가 먹는 부분에서 그렇다. 그 순간만 지나면 아무 것도 먹고싶은 게 없는, "뒤끝없는 사람"이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생각났으니 숙제를 해야지.
국수 삶고 룰루랄라 고추장 소스, 계란 탁, 햄 볶고 오이 썰고 비벼 먹었다. 고추장을 너무 많이 투약(!!)했었나. 스스로에게 매운 맛 보여주려고 각성제 고추장을 둬 숟가락 퍼넣었는데 맵지는 않고 짜고 텁텁했다. 어제밤 침 고이게 한 맛은 이게 아닌데....순간을 놓쳐버린 입맛은 이미 저 만큼 가 버렸구나.
오후 내내 물을 얼마나 들이키는 중인지, 불러오는 배를 안고 각성은커녕 이 봄날에 몽롱하기만하다. 그러게 플랜을 너무 희망적으로 세울 필요가 없다 말이지. 쳇, 3월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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