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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너의 이름은 새대가리

by 愛야 2009. 9. 5.

 

연못가에 이르렀다. 수초와 갈대를 다 제거해서 주변은 깔끔했다. 몸 숨길 은폐물이 사라지니 오리들이 수면 위에 덩그러니 보였다. 한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연못가에 서서 오리를 부르고 있다.

"구구구, 오리야 이리 온나~."

오리도 닭처럼 구구구 모으는구나. 하지만 닭 아닌 오리들은 들은 척도 안 한다.

 

"구구구우!! 오리야아~이리 와라, 이리~"

자존심 강한 것들 같으니라구. 아주머니는 오리들에게 주려는 것인지 손에 든 검정 비닐봉지를 치켜들어 보인다. 공원에서 관리받는 오리들은 배가 고프지 않다. 모이 앞에서도 의연하게 노닐며 아주머니의 언성이 높아짐을 아랑곳 않는다.

 

"오리야아, 구구구!!"

그러더니 성질 난 아주머니가 오리를 향해 마지막으로 고함쳤다.

"이리 오라니까, 이 바보같은 오리야!!

 

히익, 우울한 와중에도 나는 웃고 만다.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죄로 오리들은 졸지에 바보가 되었다. 그러게, 생활과 밀접한 외국어 하나쯤은 배워두는 게 좋단다 오리야.

  

 

오리에게 거절 당한 아부머니 곁을 지나쳐 다시 한 바퀴 돌고 오니, 어느새 바보 오리들은 상륙하여 나무 그늘 밑에 모여 있다. 햇살이 좀 따갑다고 나무 아래로 피신할 정도면 나름의 잔머리는 있어 보이건만... 아님 반상회 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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