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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들에게

by 愛야 2009. 12. 9.

아가.
19년 전 너를 세상에 내보내고 철없이 나는 행복하였다.
아무도 낳지 않는 아이을 낳은 듯, 아무도 누리지 못한 경험을 한 듯 그렇게 온 마음이 뿌듯하고 으쓱하더구나.
미안하다, 그 행복감을 나는 오래 간직하지 못하였다.
나는 곧 잊었나 보다.
 
잊은 자리에는 대신, 홀로 바닷가에 우두커니 서 있던 기억이나
입원을 밥 먹듯 한 네 병치레에 대한 두려움이나
4살 난 너의 손을 잡고 울며 걸었던 12월 어느 밤의 아픔이나
그때 눈물 얼어붙은 뺨을 때리는 날카롭던 겨울바람이나
아침에 눈 뜨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결재대금이나
울먹이며 나에게 전화하던 10살의 너, 너, 두려움에 떨던 너의 목소리나
삶의 끈을 놓고 싶게 하던 허망함이나,
그런 행복과 무관한 것들이 들어왔단다.
 
아가.
나는 몰랐다.
내가 행복하려면 너부터 행복하여야 된다는 것 말이다.
나는 네가 당연히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너에게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지.
엄마의 오만이다.
네가 있음으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이치를 알면서도 깊이 감사할 줄 몰랐단다.
바르게 자라준 너를 보니 나에겐 이제 눈물 흘릴 이유란 없구나.
 
아가.
때로는 나의 상처를 챙기느라 너에게 몰두하지 못한 적 많았음을 고백하마.
나는 내 뛰는 심장에 사로잡혀 그것이 혹 멈출까 두려웠지.
네 이모가 이런 엄마를 늘 나무랬다. 
나이를 헛먹었다고, 자식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필요한 순간에 해 줄 수 있도록 준비하는게 어미라고, 감상적인 삶의 자세를 버리지 못한다면 가슴아픈 댓가도 감수해야 한다고.
둘 다 좋은 건 이 세상에 없다고.
 
그래, 참으로 맞는 이치다.
나는 그동안 힘든 풍족보다 마음 편한  결핍을 선택하였다.
그것이 너와 나, 다에게 평화를 준다고 확신하였다만 이젠 무엇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혼란스럽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너를 만나던 최초의 순간, 최초의 행복함을 기억하였단다.
무조건 고맙다고, 무조건 네가 있어서 고마웠다고 말이다.
 
아가.
나는 너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해 줄 수가 없구나.
인생에 대단한 비밀이 있어서가 아니다.
천성이 재고 가늠질하는 재능이 부족하여 富를 이루지도 능력을 쌓지도 못한 엄마였다.
적극적으로 삶을 당차게 개척하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타인을 치명적으로 상처주거나 속이거나 딛고 올라서지는 않았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 되려 남에게 상처를 받곤 했지.
그렇게 살아야 혹은 그렇지 않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구나.
 
순수가 사라진 자리에 계산과 꾀가 생기는 법이다.
나는 네가 노력과 진실을 잃지 않고 살기를 바랄 뿐이다.
 
엄마가 최근 건강하지 못하여 혹 두려워하고 있니?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나를 감옥으로 여길 그날까지 꿋꿋하게 살아줄 테다.
엄마의 소망이라면, 네가 건강한 몸과 영혼으로 평범하게 사는 것이란다.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고, 많은 행운이 따라야 가능하다는 것, 우린 이미 알고 있지 않니?
 
아가.
그동안 잘 견디었다,
그리고 잘 견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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