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빙하시대 2
ㅡ 허연
자리를 털고 일어나던 날 그 병과 헤어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한번 앓았던 병은 집요한 이념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병의 한가운데 있을 때
차라리 행복했다. 말 한마디가 힘겹고, 돌아눕는 것이 힘겨울 때 그때 나는 파란색이었다.
혼자 술을 먹는 사람들을 이해할 나이가 됐다. 그들의 식도를 타고 내려갈 비굴함과 설움이, 유행가 한 자락이 우주에서도 다 통할 것같이 보인다.
만인의 평등과 만인의 행복이 베란다 홈통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만큼이나 출처불명이라는 것까지 안다.
내 나이에 이젠 모든 죄가 다 어울린다는 것도 안다. 업무상 배임, 공금횡령, 변호사법 위반. 뭘 갖다 붙여도 다 어울린다. 때 묻은 나이다.
죄와 어울리는 나이. 나와 내 친구들은 이제 죄와 잘 어울린다.
안된 일이지만 청춘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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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1966년 서울 生.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불온한 검은 피> 1991년 산문집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가 있다. 2008년 <나쁜 소년이 서 있다>로 13년 만에 두번째 시집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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