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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두붓집 여자

by 愛야 2010. 2. 16.

그녀는 오늘도 아무런 인사가 없었다. 덩치 좋은 검은 얼굴이지만 괜찮은 이목구비와 젊음을 가졌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무표정했다. 그녀는 삶이 결코 흥겹지 않다는 비밀을 일찌감치 알아버린 모양이다.

 

가게 방에 붙은 작은 유리창으로 그녀의 옆얼굴이 보였다. 텔레비젼에 몰입해 있는 듯했다. 그녀는 손님이 온 기척에 얼른 일어서 나오는 상인의 덕목을 갖추지 않았다. 나는 두 번이나 외쳐 불러야 했다, 아줌마 두부 주세요, 아줌마 두부요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가와서 간단히 물었다. 천 원? 이천 원? 나도 간단히 대답했다, 이천 원. 그녀는 국산콩으로 만든 이천 원짜리 두부를 봉지에 담아 건네고 나는 돈을 건넨다. 나도 그녀도 아무말 없이 각자 돌아섰다. 수고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고맙습니다 따위의 으례적 인사말은 서로간에 없다. 처음 몇 차례 내가 먼저 인사를 했으나 아무런 반응을 못 들은 후부터 나도 그녀처럼 인사는 생략했다.

 

그녀의 무표정하고 화난 듯한 얼굴을 떠 올리자 잠깐 혼란스럽다. 내가 그녀를 방해했나? 고작 두부 한 모를 달라고 따뜻한 방에서 궁둥이를 떼게 한 나는 그녀에게 잘못을 저질렀나? 나는 미안해야 하나? 흐흐, 늘 드는 의문점이다.

 

지난 여름 어느 날, 그녀는 가게의 냉장고에서 어묵봉지를 꺼내 박스에 담고 있었다. 처음 나는 그녀가 어묵봉지를 내다버리는 줄 알았다. 유통기한이라도 지나 그 손실 때문에 화가 나서 말이다. 그녀는 바닥에 놓인 박스 속에 내팽개치듯 여러 봉지를 던져 담더니 스쿠터에 싣고 어디론가 부릉 갔다. 그렇다면 필경 그것은 배달인 모양이었다.

 

그 순간 나는 위 손두부 가게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주문한 어묵도 아니건만 보는 내내 언짢았던 것이다. 자신이 팔아서 돈 버는 물건을 (그것도 식재료 아닌가) 저토록 함부로 다루다니.

 

그래서 분연히 시장 위쪽의 또 다른 손두부 가게로 갔었다. 그러나 내 정의감은 거기까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다시 아랫집의 두부를 사러 되돌아 간 것이다. 그것도 꽤 빨리 세 번만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필요한 것은 두붓집 여자가 아니라 두부라는 사실, 두붓집 여자를 먹는 게 아니라(쓰고보니 상당히 거시기하다.) 두부를 먹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쳇, 아랫집 두부가 더 맛있었다는 말이다.

 

그 이후 나는 그녀가 불친절 하든 말든 개의치 않기로 했다. 내가 내민 돈과 치환해서 얻는 게 무엇인지 그것에만 집중하기로 하였다. 그러자, 늦은 저녁 두부 있어요? 묻는 나에게 고개만 가로 저어 보여도 더 이상 아무런 분노가 일지 않았다. 나도 꽤 실용적 심보를 단련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고단하여 나 또한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날, 두부 주세요라고 목청껏 두 번이나 외쳐야 할 때는 정말 싫어졌다, 그녀 두붓집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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