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호시탐탐 몸을 열어젖힐 기회만 보는 작금에서야 눈이 오다니, 정말 이 지방 사람들을 너무 얕보는 거 아니냐고!
전국 눈소식에 침 질질 흘리며 긴긴 겨울 다 보내지 않았느냐고!
췟, 나도 자존심은 있다.
7시도 안 된 꼭두새벽 누군가에게 눈 온다고 전화를 했다든가
아들에게 "우리 동네 눈 억수로 온다!"며 뻐기는 문자를 날렸다든가
그런 유치한 짓거리 했다고 우찌 말하노, 나는 절대 말 몬 하지러.
하지만 이 정도는 우리 도시에선 폭설이라고 부르는 게 예의지.
학교는 휴교를 하고, 눈 장비 있을 턱 없는 차들은 벌벌 기고, 도시 전체가 난리통이 되어 버려.
부산에 눈 온다는 사실이 뉴스로까지 보도되어 많은 윗지방 친구들이 웃음 반 축하 반의 전화를 걸어오는 건 고마워.
아프리카에서 영상 10도의 한파(!) 뉴스를 볼 때의 기분을 느끼셨나벼.
블로거들은 카메라 움켜쥐고 눈 녹기 전에를 외치며 밖으로 내달렸을 텐데,
오호 애석하여라, 점심 무렵 나온 햇살 한 방에 눈은 눈녹듯 스러지네.
내 이럴 줄 아라따...
퇴근 무렵 우리 동네 도로는 뽀송뽀송, 언제 눈이 왔었냐고 묻는다.
눈 쌓인 골짜기를 훓고 나에게 날아온 바람만이 칼처럼 매웁다.
이상한 것은, 눈을 거쳐 온 싸늘한 공기는 언제나 슬퍼, 그래서 코끝이 빨개져...나도 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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