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나를 원망하지 마라.
원망이란 억울한 편이 하는 법이다.
원망을 하자면 내가 해야 마땅하나, 나 그대를 원망하지 않겠다.
내 이유는 그대와 다르다.
이제는 그대를 되새김질 않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대를 기억하지 않는다.
세월이 희석시키지 않는 것은 없다.
있다면 그건 이미 종교다.
한때 눈물은 내 장기였으나 지금은 내 소망이 되었다.
눈물을 흘리고 싶으나 흘려지지 않은 지 오래다.
울어야 할 이유도 떠오르지 않는다.
용서를 해서냐고?
아니다.
나는 용서할 위치에 있지 않다.
나는 한낱 평범한 인간이다.
평범에게 평범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는 마라.
용서할 때 백지처럼 용서하는 자 과연 몇 있겠는가.
그저 잊을 뿐이다.
Y. 그대와 스치듯 만나진다 해도 나는 달라질 게 없다.
내 마음과 입술은 같이 침묵하리라.
사랑이란 찰나적인 허세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은밀하고 정교하게 남은 흉터가 가끔 부풀어 오르지만, 그것도 마음먹기 나름이다.
휴지처럼 한 손아귀에 넣고 뭉뚱그린 후, 절대로 펴 보지 않고 그대로 두면 된다.
지나간 것, 지나가지 않은 것, 미처 다가오지도 않은 것으로 분류해서 던져두면 쉽고 간결하다.
지나간 시간은 이미 나를 스쳤다.
그것은, 다시는 어쩌지 못하는 경계로 밀려갔다는 뜻이다.
Y.
나는 그래서 그대를 펴 보지 않는다.
대신, 멀리 던져버렸다.
아, 까마득하다.
그렇다.
나에게도 남 못지 않은 교활한 이기심과 계산속과 냉혹함이 있었다.
하필이면 날씨마저 따뜻하다.
그대를 부인하고 내려오는 비탈길, 길가의 꽃, 이 보랏빛 들꽃은 잊지 않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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