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로소 나는 오랜 숙제를 실천했다. 나는 충분히 외로웠다. 외롭고자 했던 내 뜻을 이루었다. 내 고독이 평화로워서 참으로 다행하다.
더구나 봄, 나는 시기를 잘 선택하였다. 산뜻하고 가볍다. 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잊어질 것이다.
이 길을 그 옛날 왜 선택하였는지는 비밀에 부쳐지리라. 나는 함구할 것이다.
#2
백만 년 만에 라면을 끓여 먹고 저녁 내내 부대꼈다.
풀과 과일과 밍밍한 양념에 적응된 내게 맛있는 라면이란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계란 탁 파 송송 하였기에 차마 버리지 못하고 다 먹는다.
먹은 지 두 시간이 지나도 라면은 미이라처럼 살아있다.
미련하다.
먹고 힘들 지경이면 버려도 죄가 아니다.
밤 공원을 50분 걷는다.
설렁설렁 온갖 망상을 곁들이던 보통의 산책과는 다르다.
팔을 앞뒤로 들어 올리며 속보로 걷는다.
엉덩이에 잔뜩 힘을 주고 다리도 쭉쭉 뻗는다.
공원에서 전투적으로 걷는 여자들을 보며 왜 저러나 했었다.
그들도 죽지 않는 라면을 죽이는 중이라는 것을 이제 알겠다.
숨 죽이는 것.
나는 내 근육과 위장과 혈관을 혹사한다.
#3
입을 열지 않은 하루가 가고 드디어 밤이 된다.
평온하다.
어둠은 내 태생이다.
언젠가부터 거실의 불만 켜두고 안방은 소등이다.
거실로부터 스며오는 옅은 불빛과 텔레비젼의 불에 의지해 나를 깊이 수장시킨다.
이게 아니다.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길을 잊는다.
잊어서 잃는다.
잃는다, 잊는다.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다.
다만 잃는다보다는 잊는다가 덜 무섭다.
어느 블로그 댓글의 한 구절에 나는 그만 입을 열어 크게 웃어버린다.
목젖을 열어 웃는다.
웃음이 하하하 의성어로 발성되어 오늘 처음 소리를 낸다.
혼자 킬킬 눈물까지 흐른다.
이름 모를 블로거에게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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