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날

도시의 섬

by 愛야 2017. 4. 15.

 

절벽 위에 마을이 길게 서 있다.

멀리서 보니 깨끗해 보이지만, 낡고 고달픈 동네다.

영도 흰여울문화마을.

무슨 문화인지, 왜 문화인지, 가보고 더 의아했다.

떠날 형편이 못 되어서 그대로 살아왔을 뿐이다.

가난, 그게 문화로 불릴 일이던가.

 

 

내세울 것이라고는 눈길만 돌리면 보이는 바다가 전부다. 

그것뿐이다.

그것뿐이었는데, 1,000만 관객의 영화 <변호인> 배경으로 이 마을이 등장해 버렸다.

4년 전이었다.

그때부터 낯선 사람들의 발소리가 골목길을 누비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몇 편의 영화에 등장했었는데, 가장 조명을 받은 것이 '변호인'이었다.

영화 한 편으로 '문화'마을이라 이름 붙인 일은 아프고 송구하다.

가까운 '감천문화마을'의 인기의 영향이지 싶다.

 

 

저 절박한 대사를 하였던 여배우는 지병으로 얼마 전 세상을 떴다.

나는 영화 <변호인>을 안 보았다.

보지 않아도 본 것 같은 느낌적 느낌.

법정 영화를 몹시 좋아하는데도 말이다.

 

관광안내소를 지나쳐 가는데 안에서 안내 유니폼 입은 동네분이 나온다.

안으로 들어오시지 그냥 가느냐고 한다.

나는, 안내받을 게 없어서리... 하면서 웃는다.

하지만 그녀가 무료해 보여서 못 이긴 척 들어간다.

<변호인> 스틸사진이 벽에 붙어 있다.

 

그녀는 딱 하나의 의자가 창 너머 바다를 향해 놓인 방도 안내한다.

낮은 문틀 윗부분에 "머리 조심"이라고 쓰여 있었다.

좋아요, 어디 한번 쓸쓸해 봐라 이거군요.

그녀는 한숨 쉬듯, 여기는 다 무허가라 새로 가게를 낼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 마을에 보탬이 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고 한다.

오직 이 마을의 유일한 핫플레이스, 흰여울점빵이 있었다. 
 

점빵은 다 아시다시피 빵집이 아니다.

낮은 천장의 조그만 공간에서 여인 둘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오고, 붉은 봄꽃도 피었다.

나는 혼자 오길 잘하였다.

웃음조차 창문 너머 어느 할머니에게 미안할 테니까. 

 

바다는 수많은 선으로 분할되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지기도 했다.

얼마 걷지 않아 마을길은 끝이 나고 말았다...... 나는 아직 결론을 내지도 못 하였는데. 

나는 무엇을 바라고 터벅터벅 혼자 왔던 것일까.

차가운 계곡에 발끝부터 조심스레 담글 때처럼, 첫 용기가 필요하였지.

낯선 마을로, 낯선 얼굴로, 낯선 마음으로 떠날.

 

나의 방문 앞이 바다였으면 했으나, 어느 시처럼 이번 생은 틀렸다.

 

 

특별출연.

애절한 눈빛 연기 중임.

맞은편에 동네 아지매 세 분이 호떡을 드시고 있었음.

녀석은 그 냄새에 소환된 듯.
   



'그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안의 짐승  (0) 2017.09.17
야무진 꿈  (0) 2017.05.19
담배 혹은 막대사탕  (0) 2017.03.28
각자의 숙제  (0) 2017.03.07
흐린 밤  (0) 2017.02.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