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일 것이다.
드러나는 차림새나 말. 습관. 분위기. 인상이야 객관의 몫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은 결코 피할 수 없기 마련이다.
글을 읽고 씀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남의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깊이와 지식의 창고에 화들짝 자극받는다.
소설가이든 시인이든 모두 엄청난 독서량과 세련된 지성과 의식을 내보이기에 나는 오메, 어쩌면 저런 생각을 다하나, 싶다.
독자와 작가가 같은 수준일 필요는 없기에 나는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부끄럽다.
왜냐하면 많은 '척'을 하며 살기 때문이다.
특히 지성인인 '척'을 많이.
나는 무식하고 촌스럽고 둔해요, 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저변의 심리를 들여다 본다.
겸손의 탈을 쓴 자만과 오만이 가득하다.
겸손이 지나쳐서 빈정거림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발언이다.
그러면 그 반대의 표현법은 어떤가.
얼마전 한 주부가, 무얼 전공하셨는지 질문한 나에게 예쁘게 웃으며 예, 전 공부를 많이 했거든요, 하였다.
나는 이어 구체적 전공에 대해 묻지 않았으며 두 번 다시 그녀에게 학문에 대한 질의는 하지 않았다.
한국의 정서상 매우 아니꼬운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인가.
낮추어도 높혀도 올바른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포장과 위장에 있다.
스스로 가진 것보다 더 많이 보일려 할 때 포장이 필요하다.
상대는 나의 포장지를 읽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칭찬한다.
나는 포장지를 구입하기 위해 수많은 남의 글과 검색과 밑줄 쳐진 책들을 전전한다.
그러나, 이상하다.
남이 속아줄 때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 여기며 흐뭇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속으로 머쓱하고 불편치 않던가?
소화되지 못한 얕은 지식들이 꼬들거리며 살아있지 않은가?
그것은 사기를 쳤기 때문이다.
남을 기만하여 손실을 입히고 경제적 이익을 편취한 것이 사기일 것이다.
경제적인 개념을 떼어내 버린다면 엄연히 이것은 지성의 사기이다.
사기에 동원되는 효과적 도구들은 으뜸이 어려운 전문용어이다.
매우 현학적이고 그럴 듯해 보인다.
외국어라면 원어를 그대로 쓰는 게 좋다.
이를테면 비유와 은유라는 쉬운 말보다 '메타포'라고 하면 더 있어 보인다.
'메타포'가 가진 광범위한 기능이 비유나 은유와 일대일 대입이 안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변명의 출구는 열어 두기로 한다.
책에 대한 소개도 빠질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책을 소개해 주어서 나는 사 보지도 않고 남이 읽어주는 것을 편히 받아 먹었다.
불행히 그것은 내 것이 아니므로 내 지성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책 제목과 작가는 많이 외워져 있지만 내 속에서 그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다만 내가 읽은 듯이 사기칠 수 있는 소스 확보의 의미는 있다.
그 다음으로 애용되는 것 중의 하나에 동일시(同一視)이다.
말과 글 속에서 유명인사와 고수들을 등장시킨다.
그들과 일면식이 있던지 혹 잘 알기라도 하는 경우는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독자는 나와 그들을 찰떡같이 동일한 레벨이라 믿어준다.
자칫 스스로도 내가 그들과 같은 수준이라 믿는다.
그럴리야 없지만 혹여 나에게서 희미하게라도 지성의 냄새를 맡았다면 분명 내 사기가 성공한 경우다.
자신은 자신를 속여선 안되고 속일 수도 없다.
또 속여야 하는 이유도 없다.
멋지고 잘 다듬어지고 좋은 글을 써야 빛난다는 강박을 버려야 한다.
멋진 댓글을 써야 나도 반열에 끼일 수 있고 그들도 나를 대접해 줄거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책을 읽고 난 후의 문제가 나는 가장 중요하다.
나에게는 생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작가의 사상이 이해되는 숙성의 과정이고 내 안에 자리잡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식이다.
혹자는 지나치게 생각하는 버릇은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을 더 초래한다고 말하나, 골똘히 생각하지 않을 바에는 왜 글을 쓰고 책을 읽는가.
나는 다독하던 습관을 버린 지 오래되었다.
다독으로 스쳐갔던 작가들에겐 매우 송구한 일이지만 그들의 책이 내 속에서 아무 것으로도 싹트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 나에게서 책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그 자리에 상념이 자리잡았다.
세상이 다 책이다.
사람들이 다 책이다.
상처가 스승이라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 세상은 온통 우리들의 책이 아니던가.
남에게 사기치지 않기 위하여 골똘히 생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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