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날

아들의 빤스

by 愛야 2006. 6. 7.

요즘 부쩍 많이 듣는 소리가 자식 키우기 어렵다는 부모들의 하소연이다.

대개 그 하소연은 분노와 서글픔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여기서의 키우기 어렵다 함은 경제적인 어려움이라기보단 자식들의 "머리 치켜듦"이다.

 

최근에 나도 아들과 여러 번 언성을 높혔다.

중 3이면 대화가 조근조근 될 법도 하건만 녀석은 도대체 두어 마디만 하면 먼저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힌다.

애초의 주제는 어디로 가고 (뭐 모든 싸움의 양상이 그렇지만) 서로 말꼬리를 붙들고 상처를 받고 또 입힌다.

요즘은 사춘기가 초등학교부터라던데 중 3에도 진행 중인가? 

 

나의 주제는 언제나 " 네 말 뽄새가 그게 무어냐, 상대방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니 말만 쏟아내느냐, 부모란 니가 싸우는 상대가 아니다."이고,

아들의 주제는 "내가 하지도 않은 말과 생각을 왜 엄마 마음대로 지어내 야단을 치느냐."이다.

평행선이다.

"엄마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대드는 것 봤냐? 설령 부모가 틀려도 일단 듣는 게 자식이야."라며 유교사상으로 마무리 제압하는 나의 신세가 참 가련하다.

 

눈을 치켜뜨며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녀석을 보면 성질 급한 나는 정수리 뚜껑이 화악 열림을 느낀다.

그러다가 내가 새끼를 상대로 무슨 말씨름을 하는 거야 싶어 한순간 입을 딱 다물어 버린다.

마음이 닫히는 소리가 탁 난다. 

아들넘도 지 방문을 탁 닫는다.

동시에 온 집에는 침묵이 흐른다.

나는 3박 4일 말을 안 해도 답답함을 못 느낀다.

하지만 아들은 답답한 모양이다.

왜냐면 엄마의 도움이 없으면 생활이 안 되니까.

 

전쟁 다음날, 아들은 목 근육이 틀어졌다며 아악, 으악 온갖 비명을 크게 지르며 몸을 통째로 돌려보인다.

엄마, 집에 파스 없어? 하길래 응, 간단히 대답했을 뿐 왜 어디가 얼만큼 아프냐 묻지 않았다.

목 안 돌아가는 것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야 나을 것이라는 내 나름의 계산이 시킨 무관심이었다.

굶고 학원을 가든 늦잠을 자든 냅둔 며칠이 지나자 아들은 조금 말랑말랑해진 목소리로 엉겨붙는다.

"옴마, 돈..."

 

 

 

<스캐너가 없는 관계로 사진을 사진찍었더니 어둡고 흐려요.>

 

 

쓸쓸한 마음에 옛 앨범을 본다.

천사 같은 아들 모습을 본다.

그러다 이 사진을 발견했다.

여름이라 곧잘 기저귀 발진이 생겨 빨갛게 되곤 했다.

깨끗이 씻겨 연고를 바른 후 통풍(!)을 위해 홀라당 벗겨 낮잠을 재웠다. 

시원했는지 잠시 후 아들은 이런 기묘한 자세로 자고 있었다.

남자의 기본 자세를 벌써 터득한 건가? 크크크.

나는 몰카를 찍는 마음으로 사진을 여러 방 찍었다.

물론 저 뒷면으로 가서, 즉 똥꼬 쪽에서의 결정타도 수확했다.

흠...장래 니 여자 친구에게 확 공개한다는 협박용으로 손색이 없을 사진이다.

다만, 아기의 인권과 미풍양속을 위해 여기선 차마 못 올림을 양해하시라.


아아, 저 궁둥이를 보라, 말캉한 촉감은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행복이 아닌가.

접혀진 팔과 다리, 살의 보드라움, 사진 속의 아기와 쾅 닫힌 저 방문 너머의 아들이 마치 별개의 존재 같다.

네가 이렇게 이뻤던 시간도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 입가에 슬몃 웃음이 물린다.

그 시간을 너에게서 빌려 내가 행복했었구나.

아들이 이 사진 올린 줄 알면 가출할지도 모른다.

 

조렇게 작은 아들의 궁둥이가 이제 커져서 얼마 전 팬티를 새로 사 달라 했었다.

사진 속의 몽실한 궁뎅이를 보니 오늘은 사 줘야겠다 싶다.

6학년 때 처음 입어 본 이후 허전하다면서도(뭐가? 말을 해야 알제) 고수하는 사각 트렁크 빤스, 사이즈가 우째 되더라?

에미들의 분노에는 인내가 없다. 이렇게 쉽게 해제되다니...

 

 

 

 

 

 

 



'그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이구, 그럼 그렇지.  (0) 2006.06.25
보름이 아니었으나 보름인  (0) 2006.06.12
오백 원어치 횡재  (0) 2006.05.26
예보  (0) 2006.05.19
니가 내 되어 봐야  (0) 2006.05.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