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시장에 들러 몇 가지 살 것이 기억났습니다.
아까 낮에 슈퍼에 들렀건만, 또 반드시 빼먹는 게 있기 마련이니까요.
미역국에 넣을 홍합을 약간 사고 싶었습니다.
쇠고기만 넣으니 깊은 맛이 없더군요.
첫 번째 어물전에서 걸음을 멈추니 막 가게를 치우고 있던 젊은 주인이 뭘 찾으시냐고 묻습니다.
"홍합 있어요? "
"예.. 그런데 이것밖에 없네요. "
주인이 들어 보이는 양은 아주 적었습니다.
"할 수 없지요 뭐. 저도 조금만 필요하니까 그거라도 주세요."
나는 그 집이 지구상의 마지막 어물전인 양 다른 집으로 가 볼 생각을 못 했습니다.
사실 너무 피곤했거든요.
"햐.... 근데 너무 적은 양이라 돈 받기가... 오백 원만 주세요."
그런데 주인은 홍합을 물 따르고 봉지에 담아 보더니 다시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오백 원어치도 안 되겠어요. 그냥 가져가시고 담에 꼭 들러 주세요."
나는 젊은 주인 아저씨를 다시 한번 일별 합니다.
선심 쓰기 위해 남겨 놓지는 않았을 것인데, 적은 양이라도 오백 원을 받지 않고.
장사의 속성상 돈을 받지 않고 거저 주기가 어디 쉽습니까?
뭐 덕분에 나야 좋지만 말이지요.
나는 그래서 오백 원어치의 횡재를 했습니다.
내 보기엔 천 원어치는 되어 보였는데, 인심 후한 주인은 원가로 본 모양이지요.
마음속에서 새로운 단골 어물전이 벌써 하나 생겼습니다.
고맙다 하고 나오니 바로 옆 가게도 어물전이더군요.
그 집엔 홍합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참 재미있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내가 첫 번째 집의 홍합이 적어서 곧 다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면, 원하는 양만큼의 홍합을 살 순 있었겠지만 공짜로 얻진 못 했겠지요.
지구상에 다른 어물전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내 퍼석함이 행운으로 연결되는 아이러니가 우습더군요.
인연이나 행운이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알지 못할 미래의 시간 속에 이미 준비되어 있는 걸까요.
사소한 발걸음 하나가 행운을 내 것으로 만들기도 하고 머피의 법칙으로 내동댕이치기도 하는 걸까요.
늦은 시간 하필 그 어물전 앞에서 멈춘 일이 나를 그 집 단골로 만든다면, 인연이란 이렇게 엮어지는 걸까요.
삶의 흐름을 타고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흘러가지요.
흐르다가 어느 사람, 어느 만남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그를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이것은 필연이 시키는 일일까요.
아니다 싶으면 가던 발걸음 다시 재촉하며 가면 그만인 것, 그 또한 우연이 시키는 일인가요
예정된 것이라 여기면 인연이란 너무 무시무시하군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사소하고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어 일견 가벼워 보이는 것일지라도 緣으로 말미암은 결과라면 결코 거저 생겨난 것이 아닐 겁니다.
달군 참기름에 쇠고기를 볶다가 홍합을 같이 넣고 잠시 볶습니다.
횡재가 갈색으로 볶이는군요.
미역을 넣고 뒤적이다 물을 붓고 뚜껑을 덮습니다.
이제 끓어오르면 거품을 걷고 간을 알맞게 하면 끝입니다.
이런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내가 전생에서 어물전 주인에게 준 오백 원어치가 돌아온 건지도 모른다, 후생을 편안히 잘 살려면 이생에서 잘해야겠는데 도무지 후생을 잘 살 자신이 없네...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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