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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콩알만한 모델

by 愛야 2007. 1. 26.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소로 걷는다.

대학교 앞의 정류소에는 방자한 걸음과 바쁜 달음박질이 무성하다.

 

돈뭉치를 주운 횡재의 기억도 없는데 대체로 나는 땅을 보고 걷는 편이다.

그러니까 짧은 키를 더 줄여보겠다는, 주제를 모르는 걸음걸이다.

 

한 발 디딜려는 어느 순간, 보도블럭을 걷고 있는 무당벌레를 보았다.

이 발걸음들 속에서 무슨 똥배짱으로 사람 행세하며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날개가 어디 아프냐고 물었지만 대꾸 없이 꼼지락 꼼지락 걸어만 간다.

 

건방시런 넘 같으니, 보도블럭에 쭈그리고 앉아 카메라를 접사시킨다.

내 머리 위로 장대같은 청년들이 울타리처럼 지나가든지 말든지.

 

찰칵.

눈 깜짝할 순간, 접었던 반달 날개를 쫙 펴서 날개짓 몇 번 하더니 메렁 날아간다.

그 재빠름이 어찌나 번개 같던지 내 시선이 따라잡지 못했다.

천둥만큼 울렸을 셔터소리에 놀랐음을 짐작 못 할 바 아니지만 허 참, 로또복권처럼 허망하다.

저리 작은 날개로 순식간에 천 리를 가다니, 조 작은 날개의 위력이라니...

연달아 눌린 두 번째 화면엔 빈 보도블럭만 증거로 남아 있었다.

 

그럴 거면서, 그리 미련없이 날아갈 거면서 목숨을 걸고 땅을 왜 걸었던가.

웬 친절한 아지매의 카메라에 캐스팅 되고 싶은 스타지망생으로 추측할 수 밖에 없다.

Ladybug ladybug fly away home....노래처럼 저거 집으로 간 것 같진 않다.

 

배은망덕한 너를 용서한 건 잠시 즐거웠기 때문이다.

카메라 때문에 니가 짓밟힘에서 살았다는 거.

그 먼저 너를 발견한 천사 비슷한 여자가 땅을 보고 걸었다는 거.

또 그 먼저 그 여자는 운전을 못하므로 버스를 타야 했다는 거.

또 그 먼저, 그 먼저,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일이 너무나 많아 왔다는 거.

그것을 알고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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