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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팥빙수 효과

by 愛야 2010.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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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운 여름에 누군들 식욕이 있겠어? 내 나름 챙겨 먹고 있으니 먹으란 잔소리 좀 하지 마라. 친구에게 투덜거린 후 전화를 끊고 나는 나의 저녁을 차렸다.

 

내 식탁에 팥빙수의 계절이 도래하였다. 집에 있는 빙수기는 각얼음을 넣고 손잡이를 돌려야 하는 완전 수동식이다. 연필깎이를 생각하면 된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것이다, 그 엄청난 소음을. 덜거덕 우당탕 공장 돌아가는 소리쯤 된다. 요동하는 받침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아래를 눌러야 하므로 싱크대처럼 놓은 곳에 올려둔 채로 힘주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팥빙수 제조는 주방 바닥이다.

 

안정된 자세로 퍼질러 앉아 한 그릇을 수북이 간다. 칼날과 각얼음은 서로 겨루다가 얼음의 분신으로 끝난다. 눈가루같이 갈아 버리는 전자동보다는 이 수동식의 사각사각한 입자가 오히려 더 좋다. 우유를 붓고 팥을 조금만 얹는다. 그러면 끝. 나는 과도한 토핑을 싫어한다. 심지어 사 먹으러 가서도 토핑 빼고 우유에 팥만 얹어 주세요 한다. 그래도 돈은 다 받더라.

 

자, 되었다. 팥빙수, 양상추 한 접시, 양파절임 몇 쪽, 두부 약간, 토마토 하나, 페스트리 빵 하나, 그리고 뜨거운 커피.... 이기 머꼬? 빙수와 커피가 같이 다 올라온? 흐흐, 커피도 마시고 싶으니까 어쩔 수 없다. 정체성 불명의 뒤죽박죽 밥상이다. 얼마 전에도 찬 것과 뜨거운 커피를 같이 먹었다가 장이 경련을 일으켜 죽다가 살아난 적 있었다.

 

먼저 빙수로, 종일 불타올랐던 내장과 핏줄을 식히고 나니 벌써 배가 두둥실 불러 버렸다. 저걸 우찌 다 먹노 나머지를 노려보다가, 오줌을 한번 누고 와서 마저 먹었다. 운동을 갈 거니까 먹어둬야 해.

 

물론 먹기 전에는 바닷가까지 산책 겸 운동을 갈 생각이었다. 땀 흘리며 후프도 200번 돌려주고 말이지. 하지만 인생이 계획대로만 흘러가 준다면 뭔 걱정인가. 더위와 일과 소화에 기운이 빠진 내 사지는 그냥 널브러져야겠다고 완강히 저항했다. 최근에는 조금이라도 뭘 먹기만 하면 바로 뻗어 버린다. 뻗기 전에 얼른 신발을 신고 나와야 최소한의 산책이라도 가능했다. 허리上學的도 허리下學的도 아닌, 저스트 허리學的  두리뭉실 인간형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그리하여 오늘 아침 얼굴은 당연히 보름달이다. 것도 퍼석거리는 보름달. 하지만 한 가지가 나아졌다. 근 몇 주째 파들거려 너무나 신경쓰이던 왼쪽 눈꺼풀이 조용하다. 이 어인 팥빙수 효과인가?

 

 

 

 

 

 

 

 

     Today, Tomorrow, Forever

      엘비스 프레슬리 앤 마가렛의 고전적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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