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건빵봉지를 바구니에 담고 말았다. 건빵을 두고 갈등했던 것은 마트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세 봉지가 한 묶음으로 된 건빵이 입구에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얼마 만에 사는 건빵이런가.
지난 설 무렵이었다. 동네 마트에서 명절이라고 과자류를 싸게 정리하였다. 평소에 3봉지 1,000원 하던 것을 글쎄 10봉지에 900원이라지 뭔가. 과장하자면 심학규 눈 뜨드끼 하였다. 건빵을 일용하던 사람으로서 이런 경우 마땅히 사야지 않나, 안 사면 이건 건빵과 명절에 대한 모독이야 하면서 장바구니 소복하게 주워 담았었다.
아들에게 그날의 횡재를 마구 자랑질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들은, 건빵을 끊임없이 꺼내 싱크대 수납장에 저장하는 엄마를 향해 픽 실소를 날렸다. 그런데, 그렇게 사다 두고도 무언가가 미진하였다. 마트에 두고 온 건빵이 도무지 아깝고 억울한 것이었다. 나는 다음날 장보러 가서 또 엄청난 양을 사고야 말았다. 머잖아 이 세상에서 영원히 건빵이 사라질 것처럼.
야, 이건 내가 좀 이상하지 않냐? 싶어진 것은 두 번째 가득 들고올 때였다. 쌀 때 사서 쟁여두고 싶은 것은 누구나 비슷한 심보이지만, 그건 그 차액이 클 때나 하는 짓거리지 않은가. 금덩어리도 아닌 건빵에서 차액이 나 봐야 얼마라고, 스스로 어이가 없었다. 싸구려 건빵에 집착하는 걸 다행이라 해야 하나, 경제개념이 없다 해야 하나.
이번에는 아들에게 자랑도 못 하고 작은 방에 건빵봉투를 들여다 감춰 두었다. 싱크대엔 넣을 공간이 없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엄마 병원에 꼭 가 봐라." 할 것 같아서다. 그로부터 봄 내내 나는 사다 둔 건빵을 먹었다. 심지어 밥과 함께 건빵을 먹었고 커피와도 먹었고 오며 가며 몇 알씩 새 모이 먹듯 집어먹었다. 먹으면서 뇌었다. 이건 중독이야 중독. 고만 먹자. 고만 먹자.
그래서 그 많은 건빵이 바닥나자 정말 씻은 듯이 그만 먹었다. 다행히 손 떨리는 증세는 없었다. 마트에 갈 때마다 건빵이 눈에 띄었으나 먹고 싶진 않았다. 수개월이 지난 오늘, 실로 오랜만에 건빵 한 묶음을(정말이다, 딱 한 묶음) 산 것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손이 가지 않았다. 왜냐고? 이미 나는 흐흐, 햇빛 찬란한 초여름 어느날, 복숭아에 꽂혔거덩!
간단히 말해 건빵에서 복숭아로 변심하였다는 말이다. 단단하고 붉은 복숭아의 아삭아삭 신선한 맛은 굿굿굿이었다. 아들이 집을 떠나 食口가 준 이후, 나의 여름 식량이었던 수박은 포기하였다. 혼자서 한 통을 처치할 길이 없었다. 대신 복숭아에 마음을 뺏긴 나는 또 줄기차게 복숭아를 사기 시작하였다. 복숭아에 꽂힌 이후 단 하루도 복숭아가 내 냉장고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멀리 여행 갈 때도 몇 알 가방에 넣어갔다. 여름이 가는 건 좋은데 아아, 복숭아를 우찌 뗄꼬.
오늘은 복숭아, 내일은 바나나, 버라이어티하게 즐기면 좋으련만 우짜자고 나는 마음에 들면 외길이다. 마음에서 이제 그만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외길>이라고 쓰고 보니 대단히 한심하다. 외길이려면 적어도 예술적 완성 혹은 인간승리는 되어야 예의인데, 고작 건빵 복숭아 수박이거나 소주라거나 그딴 것에서 외길을 찾다니, 고달픈 삶의 아집이란 말이지....사는 게 참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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