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가지 밑반찬쯤 나도 맹글 줄 안다.
멸치 볶고, 콩나물 무치고, 갈치찌개 끓이고, 손가락 한번 데고, 그리고 쳇, 나가서 쭈꾸미랑 소주 묵었다.
얼마 전에는 된장찌개 보글보글 일껏 끓여두고 빵과 커피 묵고 출근했다.
뭔 짓?
#2.
그 뉘가 가을이 책읽기 좋은 계절이라고 하셨나.
머리맡에 몇 권, 테이블에 몇 권, 몇 달째 굴러댕기는 책은 비싼 종이뭉치일 뿐이다.
머릿속에서 와이퍼가 작동하고 눈은 지쳐하고 내 깊은 망상이 몰입을 방해한다.
책읽기는 걷는 것과 같다.
책읽기는 사랑과 같다.
책읽기는 사랑과 함께 걷기와 같다.
책으로부터 너무 멀리 걸어나오자 책장을 넘기던 설렘과 벅참이 퇴색되어 버렸다.
책에서 멀어져 한눈파는 동안 그때그때 읽어봐 줘야 하는 책들이 그때그때 쏟아져 나왔다.
정말 쏟.아.져. 나온다.
내 머리와 눈과 망상은 그것들을 도무지 따라잡지 못한다.
이럴 때 나는 깊은 반성과 함께 돌아가야 한다.
걸어나온 만큼의 미련을 버리고, 미래를 버리고, 팽 뒤돌아 가야 한다, 그래야 책 속으로 들어간다.
첫 떨림과 통증이 어데였던가.
한 마디 말에 가슴이 찢어지고, 묘사 한 문장에 눈믈이 찔끔 솟던 공감이 어데였던가.
5학년 때의 파우스트 말고, 6학년 때의 이광수 말고, 중학시절의 가쓰라기상 말고, 헤세 말고 , 장용학 말고, 깡패소설 흑맥 아닌 어딘가.
바로 여기, 그녀의 <토지>.
연재되던 <토지>가 한 권씩 묶여 나오기를 기다려 서점으로 달려가던.
연재로 읽고 다시 단행본으로 읽고 다시 전집으로 읽고 그 후 몇 번을 반복하며 읽었던가.
아름다운 그들의 사투리에 기가 막히고 행간에 숨겨놓은 운명까지 감지하였다.
그들의 척박하고 굴곡진 인생마저 낭만적 고통으로 나에겐 남아있다.
작가는 어쩌면 그리 사랑을 잘도 그렸던가.
작가는 어쩌면 그리 삶의 역정을 한방에 꿰뚫어 보여주던가.
나는 그리움에 몸을 떨며 또다시 책장을 넘기리.
한없는 몰입,
최치수의 분노와 구천의 사랑으로 시작되는 그 우물같은 세계에 나는 영혼을 거꾸로 담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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