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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땡땡이

by 愛야 2011. 4. 2.

 

#1.

친정 엄마는 명절이 끝나면 엘보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가시곤 했다. 의사는 엄마에게 싱글싱글 놀리듯 말했다. 누부, 화장터 가서 싱싱한 부품 구해 바까 넣으소, 도리가 없으. 정형외과 병원장은 엄마의 사촌동생이니 우리에겐 외5촌 아저씨였다. 우리는 위가 아프거나 감기가 들거나 무좀이 생겨도 아저씨네 정형외과에 갔다. 아버지는 돌팔이 종합병원장이라 부르셨다. 아버지는 이 손아래 사촌처남을 좋아하셔서 지금까지 같은 산악회에 다니시는데, 정형외과 전문의도 연세 드니 등산 후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2.

그 시절 엄마의 나이에 한참 미달인 내가 관절주사를 맞았다. 어깨가 근육통처럼 아픈 지 6개월은 족히 되었고 무릎은 역사가 더 오래 되었다. 못견딜 정도로 심하지 않아 미련을 부리며 외면하였는데 그만 자수하는 심정으로 병원에 간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세 번 맞으세요, 의사가 말했다. 주말마다 기억했다가 맞아야 하니 그것도 일이라고 짜증이 일었다. 마음 같아선 어깨와 무릎 같이 주면 좋겠는데 그리 할 순 없단다. 금요일은 섹쉬하게 오른쪽 어깨를 내리고 한 방, 토요일 또 섹쉬하게 바지가랭이 걷어 올리고 왼쪽 무릎에 한 방, 그렇게 지난 주까지 각각 두 번 맞았다. 이번 주가 마지막 세 번째인데 나는 빼.묵.었.다.

 

#3.

병원 가려고 나가긴 나갔다. 어제의 한낮. 모처럼 따뜻한 세상은 봄이 넘쳤다. 볼그레한 벚꽃멍울은 터질 찰라만 호시탐탐 겨누는 중이었다. 검은 레깅스에서 벗어난 여자들의 성급한 다리가 눈부시게 거리에 출몰했다.

 

나는 이 봄길을 거쳐 관절주사를 맞으러 간단 말이지. 더이상 청춘이 아니라, 앞으론 소리치는 관절을 달래며 살아야 한단 말이지. 제길, 평균수명은 왜 그리 길어진 거야. 에잇, 치아라. 두 번 맞았으니 관절에게 예의는 다 한 셈이고, 죽을 만큼 아프진 않으니 세 번째 맞는다고 뭐 별 수 있겠어. 두꺼비집도 아닌데 헌 무릎이 새 무릎 되겠냐고.

 

나는 병원 가는 길 중간쯤의 대학 캠퍼스를 산책하다가 마트에 들러 몇 가지 식품을 사서 돌아왔다. 이마에 땀이 배일 만큼 많이 걸었다. 아, 아껴야 하는 무릎을 이리 혹사해도 되나. 도루묵. 그래도 싫다. 주사 맞으며 걸어가야 하는 앞날이란. 나는 아직 내 봄도 다 누리지 않았는데, 그런 마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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