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양념 게장과 간장 게장을 언니가 주었다. 나는 게장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들은 좋아했다. 두었다가 휴가 오면 몇 끼를 때울 수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은 겨우 한 마리의 양념 게를 발라 비벼 먹고 부대로 돌아갔다.
반찬 만들기가 싫었던 오늘 아침 9시, 나는 간장에 담긴 게를 해체하기로 하였다. 원래 먹는 일에 게을러, 손으로 덤벼야 하는 음식은 싫어한다. 그러니 반찬 없는 오늘이야말로 딱 궁지에 몰린 적절한 날이다.
다리를 하나 분질러 왼쪽 어금니 사이에 넣고 악물어 보았다. 어림도 없었다. 입술 안쪽이 게 다리 어딘가에 찔리고, 삐죽삐죽한 모양은 입에서 쉽게 굴려지지도 않았다. 게 다리를 손질하려고 가위를 들고 살펴보니, 이미 다듬어 간장에 담궈진 상품이라 더 어째 볼 곳도 딱히 없었다. 절구 방망이로 힘껏 다리를 두드렸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겠니? 껍질은 여러 금으로 으깨지며 항복하였다. 나는 그 살을 쪽 빨았다. 이젠 등딱지를 벌렸다. 흐물거리는 것들을 긁어내어 따로 그릇에 모았다. 널 된장찌개에다가 팍 넣어버릴 테다.
내게는 조금도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이 아니었다. 성가시고 게걸스런 음식일 뿐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열광하나? 죽여주는 맛이란 찝찔하고 비린 바로 이 맛을 가리키나? 음식점에서는 다들 어떻게 먹나? 손가락을 빠는 타이밍은 언제지? 게장을 같이 먹으러 가려면 보통 사이가 아니라야 하나? 그들도 나처럼 난감하게 대충 겉만 핥고 밥도둑이라고 극찬하나? 게장은 그러므로 집에서만 먹어야 하는 속성을 가졌구나.
#2.
밥도둑 아니었다. 물도둑이었다. 오전에 물 3잔과 커피 2잔을 마셨다.
#3.
두 번째 커피를 들고 창밖을 보니, 맑은 하늘에 바람이 분다. 건너편 빌라 공사 가림막이 둥글게 바람을 안았다 풀어주기를 반복한다. 저렇게 천천히 겨울이 끝나고 있다. 나는 해마다 겨울을 보내기 싫다. 그러나 저 풍경에는 어느새 봄이 보인다. 목련이라도 피어버리면 끝이다. 게장을 먹고 있는 순간, 봄바람이 내 창을 지나고 있었다.
#4.
갑각은 단단할수록 더 단단한 내려침을 각오해야 한다. 바램이라면, 부디 모든 기억이 퇴화된 바위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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