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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몇 조각

by 愛야 2014. 8. 26.

 

 

#1. 어제

퇴근길에 단골 과일가게에서 산 복숭아와 포도는 실패했다.

복숭아는 무르면서 싱거웠고, 알 굵은 포도는 시었다.

나는 무른 것보다 단단한 복숭아를 좋아해서 아저씨에게 재차 확인하였었다.

생물상품은 함부로 만지지 않는 게 예의라서 말로만.

그런데 단단하긴커녕 무르고 싱거울 뿐만 아니라, 복숭아 싼 포장망을 벗기니 멍들어 으깨어진 게 두 개나 있었다.

포도와 복숭아 둘 다 겉 때깔은 훌륭했다.

그래서 더 분하다.

단골을 옮길 테다, 여러 번 분했던 경험을 했기에.

잘 살피지 않고 순식간에 물건 사는 내 탓도 있다는 사실은 혼자만 알아야겠다.

 

 

#2. 일주일 전

여름은 바다를 외지인들에게 양보하는 계절이었다.

바다 본 지 오래되어 모처럼 바다로 갔다.

차에서 내리자 그때까진 조금씩 내리던 비가 바람과 더불어 거세졌다.

나 오기를 기다렸던 게야, 광풍?

한 손으로 우산을, 한 손으론 가방을 품에 끌어안았다.

명품가방 따위는 당연 아니었고, 카메라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진이 어려울 만큼 심한 비바람, 앞이 안 보였다.

아무 곳이나 들어가야것으.

와중에도 우산 아래서 눈을 치떠 까페 브랜드와 전망을 고르는 본능이라니.

 

 

 

 

 

비에 쫓긴 게 명백한 몰골의 아줌마는 따뜻한 캐러멜 마끼야또를 한 잔 주문했다.

일행?

그딴 거 음써, 한 잔이야.

커피 쟁반을 들고 2층으로 갔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혼자인 사람이 나 혼자라는 게 납득되지 않았다.

 

 

 

 

 

 

 

여름은 바다를 떠났다.

천 원짜리 우비를 입은 청춘들은 아쉬워 바닷물에 들어가지만 이미 바다는 너희를 버렸으.

발목까지의 조우로 만족하고 너희도 바다를 버렷.

 

 

 

 

 

 

커피를 너무 빨리 마셔서 사진 몇 장 찍고 나니 곧 무료했다.

출장 사진사처럼 계속 사진만 찰칵거릴 수도 없었다.

입술만 적시며 오래오래 아껴 마실걸.

급한 성질은 아이스케키나 사탕을 부숴 먹을 때처럼 암암리에 드러났다.

아직 비가 오는데, 수다 떨 사람이 이럴 때 아쉬운 거였다.

하지만 빈 옆자리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지 오래다.

 

비가 가늘어지는 것을 보고 다시 길로 나왔을 때, 나는 고단해서 그저 돌아가 쉬고 싶을 뿐이었다.

한 일이라곤 우산 날리지 않으려고 용쓴 일이 다였다.

 

 

 

#3. 지금

 

그렇게 8월은 끝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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