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먼지처럼 작은 날파리가 어느새 나타났다.
내가 포도를 먹는지 안 먹는지 우주에서 가장 빠르게 눈치채는 존재들.
#2
귀걸이 뒷침꽂이 하나가 빠져 없어졌다.
그 귀걸이를 샀던 가게에 가서 하나를 구걸했다.
여름 장신구들은 대담하고 화려하였지만 이제 평가절하되어 팔려나가고 있었다.
모든 것은 가장 제값인 시절이 있다.
원색에 멀미가 난다.
타협을 모르는 색채들이다.
사진에서 뭉텅 채도를 덜어낸다.
중간색, 가라앉는 색, 회색 그리고 블랙, 그런 것이 평온하게 느껴진다.
#3
모처럼 샌들 아닌 구두를 신었던 그제, 발뒤꿈치에 물집이 잡혔다.
여름 전까지 신었던 헌 구두였다.
여름내 방목하였던 발은 구두의 구속에 새삼스럽게 저항하였다.
마침 가방에 밴드가 들어있어 미봉을 하였지만 뒤축이 닿을 때마다 쓰렸다.
절뚝거리며 집에 와 보니 물집이 어마하게 클뿐더러 터지기까지 하였다.
굳은살 박일 때도 되지 않았나?
가을로 들어가려니 신던 헌 구두마저도 관문이었다.
폭신한 실내 슬리퍼를 찾아 발을 넣었다.
잊고 있었던 감촉, 따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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