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루고 미루었던 건강검진을 하였다.
직장 아닌 지역가입자가 된 후로는 처음이다.
나라에서 무료로 해 준다는데도 버티며 의료보험공단의 독려전화도 여러 번 받았다.
결국, 지난주 예약을 하였다.
검사일인 오늘 아침, 비장하게 걸어서 병원에 갔다.
자질구레한 여러 검사를 다 한 마지막이 위내시경이었다.
나는 생애 첫 위내시경을 기다리는 동안 내내 떨었다.
겁이 나니 수면내시경을 해야겠고, 그러자니 의식을 잃는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다.
두려움이라기보다 아주 싫은 기분이라는 게 더 적절하다.
그렇다고 웩웩거리며 맨정신 내시경을 할 용기도 없으니 딜레마였다.
수면내시경 동의서에 싸인을 하고, 약을 주입할 바늘을 팔에 꽂고, 주는 물약을 마시고도 더럽게 오래 기다렸다.
이것들이 내가 떨고 있는 줄 아는 거시야.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 들어갔다.
자세 잡고 모로 누웠다.
살살 해 주세요, 와중에 나는 고참간호사에게 아부했다.
목구멍을 마취시키는 액이 치익 뿌려졌고 입에 기구를 물었다.
약 넣겠습니다, 간호사가 말했다.
아아, 두렵던 순간이다.
혈관으로 들어온 약이 피를 따라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퍼졌다.
나는 피돌기가 뇌로 접근함을 느낀다.
혈류란 폭포 직전처럼 빠른 것이구나.
의식이 화악~ 떨어지는 이 순간이 나는 정말 싫다.....
깨어나셨어요? 더 누워 계셔도 됩니다.
간호사 소리에 도리어 깼다.(아무말 안 했으면 푹 잤을 텐데, 쩝)
조금 어질어질하였으나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 말짱해졌다.
생각만큼 무섭지 않았다.
다음번 수면내시경은 쫄지 않아도 되겠다.
#2
돌아와 누룽지를 끓이다가 그제야 충격적인 검사결과 하나가 떠올랐다.
세상에나, 근래 10여 년 중 최고봉을 기록한 몸.무.게.
세포마다 뻑뻑하고 둔해서 체중이 늘었다는 걸 짐작은 하였지만 그렇게나!!
추석 이후 단 두어 달 만에 허걱할 정도가 되다니.
이건 오로지 밥솥 탓이다.
지난 9월 어느 날, 밥이 이상하게 퍼실퍼실하게 지어졌다.
압력패킹 탓인지 묵은 쌀 탓인지 그 원인을 알아야 했다.
여러 각도의 실험을 하느라 밥을 계속 지었고, 본의 아니게 빨리빨리 밥솥을 비워야 했다.
충실히 먹는 횟수와 양이 늘었다.
결론은 압력패킹을 교체해야 한다로 났다.
누가?
내가 그냥 결론을 그리 냈다.
압력패킹을 사와 혼신의 힘으로 갈고 나서, 이번에는 과연 밥이 잘 되나 안되나 또 실험해야 했다.
먹는 횟수와 양은 연속적으로 유지되었으며, 바야흐로 하필 가을이었다.
압력밭솥이 고쳐진 후에도 늘어난 밥배는 좀체 줄지 않았다.
그러자 그동안 비활성 상태였던 식욕과 지방세포가 함성을 지르며 깨어났다.
꾸준한 규칙적 폭식으로, 믿고 싶지 않은 오늘의 체중을 이룬 것이다.
빨리 겨울이 오면 좋겠다.
코트로 배를 가리고 부츠로 종아리를 가리고 목도리로 목을 가리고
가릴 수 없는 마음은 혹한의 거리로 달려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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