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를 풀어헤친 저 헐벗은 나무는 머지않아 자신이 배롱나무임을 고백할 것이다.
이제 막 가지에 잎이 돋고, 촌핑크의 꽃이 피기 시작하면 노골적인 그 꽃들 때문이라도 정체를 숨길 수 없다.
나는 나무 아래 푸른 원형을 본다.
나무가 펼쳐진 딱 그만큼의 땅은 푸르다.
참으로 정직하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햇살과 바람 고루 들락거렸을텐데, 나무는 무성했던 제 면적을 굳이 지킨다.
나무 아래는 이끼가 끼고 초록이 남았고, 나무 밖은 계절에 순응하며 노랗게 메말랐다.
우주선 같다.
세상 만물 어느 것도 자신의 과거를 떠날 수 없구나.
남지 않는 흔적이란 없다.
#2
오늘따라 하루 종일 3층 할머니의 호통이 심하다.
영감님이 저지레를 심하게 하시는지 아침부터 할머니의 욕설이 4층까지 들려온다.
험악한 욕설과 저주와 독설은 듣기 거북하다.
설령 병든 영감님이 자신을 힘들게 하였다손 쳐도 가족에게 그토록 욕설을 해야 할까.
그러면 속이 풀리고 뭔가가 달라지나.
욕설은 습관이다.
욕설을 해 버릇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화가 나도 욕설이 쉬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기껏해야, 에이 나쁜 새끼, 정도이다.
스스로 어색하고 거북해서 그런 발음이 입에 담기지 않는다.
욕을 쉽게 하는 사람은 웃으면서도 욕설을 한다.
발음부호나 호흡처럼 거북함 없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욕을 하고 안 하고가 무슨 소용인가.
이미 일어난 일은 욕을 하든 안 하든 달라질 게 없으니 말이다.
욕설은 그러니까 그 사안을 대하는 자신의 방법일 뿐이다.
나의 표출, 나의 시선, 나의 해소, 나의 공격.
3층 할머니가 자신의 남편에게 욕을 해댈 때 나는 그들의 젊은 시절을 읽는다.
할머니는 지금의 기세로 봐서 욕설쯤 예사롭게 해 왔으리라.
평생 단련된 거친 입으로 병든 남편에게 모진 말을 퍼붓는다.
영감님은 과거 자신이 아내에게 저질렀던 과오를 되갚음 당하고 있는 것일까.
병든 노년에 마주하는 아내의 악다구니는 그러니까 평생의 손익계산서와 같은 것이다.
절대 다시 고쳐 쓸 수 없는 계산서 때문에 할머니는 매일매일 화가 충천한다.
#3
그것이 무엇이든, 저 나무의 그늘처럼 전 생애의 거짓없는 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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