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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차고 넘치는 운명

by 愛야 2016. 7. 5.

 

 


 



저녁 산책 겸 시장에 가기 위해 골목길을 걷던 중이었다.

남녀 대학생 둘이 머리를 맞대고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지나치며 슬쩍 내려다본다.

학생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새끼 고양이였다!

 

여태까지 내가 만난 길고냥이 중에서 가장 어리고 작아 보였다.

뻥 좀 쳐서 큰 쥐만 한 고양이였다.

진회색 얼룩덜룩한 털은 부스스하고 볼품이 없었다.

내 첫마디가 반사적으로 나왔다.

아이고, 너거 옴마는 오데 갔노?

 


어미도 지 살길 찾아가고 형제들도 뿔뿔이 흩어졌는지 새끼는 독립군이었다.

고양이 앞에는 참치 깡통과 우유가 놓여 있었다.

학생들이 장 본 비닐봉지가 옆에 있는 걸 보아 아마 자신의 봉지 속에서 꺼내 한 상 차려준 듯했다.

그러고도 차마 두고 갈 수 없었던 그들의 마음.

여학생은 계속 고양이를 쓰다듬는다(나이 든 아줌마는 길거리 돌아댕긴 넘이니까 만지지는 말라고 충고한다).

고양이도 여학생 운동화에 몸을 비비고 가늘게 야옹거린다.

사람 셋은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니를 우째야 하노, 어휴 니를 우짜노.

 

나까지 언제까지 들여다보고 있을 수 없어 먼저 그 자리를 떠났다.

떠나면서도 뒷일이 짠하다.

길냥이는 몇 개월 못 산다던데······ 딱하지만 그기 니 운명이다.

에잇, 나는 또 운명론을 휙 펼쳤다.

 

편리한 운명, 운명에 빌붙어 모든 것을 한방에 정리하는 일이 점점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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