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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중 헛소리

by 愛야 2016. 7. 16.

#1

버스 차창 밖으로 아래위 하얗게 옷을 입은 여자가 우산을 쓰고 걸어간다.

흰 니트 티셔츠에 헐렁한 흰 바지를 입었다.

쳇, 멋있자너.

심지어 날씬하고 키마저 크다.

비 오는 날 흰옷을 입고 나서다니, 참으로 용감하다.

분명 바지 끝이 흙탕물에 젖었을 꼬야.

그러나 믿을 수 없게도 그녀의 바짓단은 깨끗했다.

 

나에게 비 오는 날 외출은 쥐약이다.

아무리 우아하게 걸으면 뭐하남.

종아리로 흙탕물이 유난히 튀어 오르 걸.

이 나이 들도록 온갖 방법을 왜 안 해 보았겠는가.

뒤꿈치를 들고 나비처럼 걸어도 보고, 발바닥 통째로 디뎌보고, 팔자걸음, 안짱걸음, 어떻게 걸어도

가시는 걸음걸음 흙탕물이 튀어 올랐다.

차라리 세차게 쏟아지는 비가 나았다. 

온통 적셔버리면 표가 나지 않으니까.

오늘처럼 추적대는 비가 더 험난하다.

 

내 친구 중에도 저 흰옷 여자처럼 흙탕물이 튀지 않는 친구가 있다.

그래서 비 오는 날 같이 걸어가면 나만 더럽고 갸는 말짱했다.

비결을 모르기는 갸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갸나 나나 그냥 걸어갔을 뿐.

아, 대체 비법이 뭐냐고!

 

#2

복잡한 좁은 길에서 우산 쓰고 천천히 걷는 사람.

에라이, "미움받을 용기" 충만한 자여.

 

#3

장마철에는 살이 안 찔 수가 없다.

비 온다고 걷기 빼먹지, L-size 부추전 뒤집지, 칼국수 들이키지, 가끔 청승이 도져 소주병 눕히지.

기온도 내려가니 더위에 떠났던 입맛이 턱하니 돌아와 막 빛을 발한다니까.

그러니까 장마로 인한 체중증가는 일종의 자연재해가 아니겠냐고. 

재해복구에 돈 대신 정신적 인내가 요구되는 특이한 재해랄까?

 

앗, 전자렌지 띵 했다.

고구마 다 쪘다!! (정신적 인내는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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