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버스 차창 밖으로 아래위 하얗게 옷을 입은 여자가 우산을 쓰고 걸어간다.
흰 니트 티셔츠에 헐렁한 흰 바지를 입었다.
쳇, 멋있자너.
심지어 날씬하고 키마저 크다.
비 오는 날 흰옷을 입고 나서다니, 참으로 용감하다.
분명 바지 끝이 흙탕물에 젖었을 꼬야.
그러나 믿을 수 없게도 그녀의 바짓단은 깨끗했다.
나에게 비 오는 날 외출은 쥐약이다.
아무리 우아하게 걸으면 뭐하남.
종아리로 흙탕물이 유난히 튀어 오르는 걸.
이 나이 들도록 온갖 방법을 왜 안 해 보았겠는가.
뒤꿈치를 들고 나비처럼 걸어도 보고, 발바닥 통째로 디뎌도 보고, 팔자걸음, 안짱걸음, 어떻게 걸어도
가시는 걸음걸음 흙탕물이 튀어 올랐다.
차라리 세차게 쏟아지는 비가 나았다.
온통 적셔버리면 표가 나지 않으니까.
오늘처럼 추적대는 비가 더 험난하다.
내 친구 중에도 저 흰옷 여자처럼 흙탕물이 튀지 않는 친구가 있다.
그래서 비 오는 날 같이 걸어가면 나만 더럽고 갸는 말짱했다.
비결을 모르기는 갸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갸나 나나 그냥 걸어갔을 뿐.
아, 대체 비법이 뭐냐고!
#2
복잡한 좁은 길에서 우산 쓰고 천천히 걷는 사람.
에라이, "미움받을 용기" 충만한 자여.
#3
장마철에는 살이 안 찔 수가 없다.
비 온다고 걷기 빼먹지, L-size 부추전 뒤집지, 칼국수 들이키지, 가끔 청승이 도져 소주병 눕히지.
기온도 내려가니 더위에 떠났던 입맛이 턱하니 돌아와 막 빛을 발한다니까.
그러니까 장마로 인한 체중증가는 일종의 자연재해가 아니겠냐고.
재해복구에 돈 대신 정신적 인내가 요구되는 특이한 재해랄까?
앗, 전자렌지 띵 했다.
고구마 다 쪘다!! (정신적 인내는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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