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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먹는 이야기

by 愛야 2017. 10. 15.



#1

먹을 것이 쏟아지는 계절이다.

과일은 물론이거니와 날씨가 싸늘해지니 붕어빵, 군밤까지 등장했다. 

오늘 아침 어깨를 웅크리며 지나치던 빵집은 또 어떠했던가.

흘러나온 갓 구운 빵 냄새는 얼마나 따뜻하고 치명적인지.

미처 결심도 하기 전에 이끌리듯 들어가 큰 몽블랑과 치즈 야채 얹은 페이스츄리를 샀다.

오오, 집 나갔던 식욕이 부디 돌아오지 말기를 다급하게 빈다.

내 기도발이 늘 꽝이라는 게 문제지만.



#2

파김치가 너.무.나 짜다.

평소에는 싱거워서 니 맛도 내 맛도 아니게 만들기 일쑤였는데, 우짜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짜서 밥 양이 많아지는 부작용을 최대한 경계하며 조심스레 한 가닥씩 먹고 있다.

다 먹으려면 꽤 오래 걸리겠다.


#3

언니가 품질 좋은 우엉이 추석에 들어왔다며 주었다.

나는 우엉이나 연근 등을 썩 좋아하진 않아서 집에서 조리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김밥 속에도 우엉조림을 넣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쿵저러쿵 잔말 달기 싫어서 주는 대로 들고 왔더니, 양이 꽤 많다.


말려서 깨끗한 우엉차로 만들까나.

친절한 인터넷에 물어보니, 잘 말려 9번을 덖으라고 한다.

내가 내 입에 넣겠다고 그런 정성을......?

그냥 조려서 반찬으로 먹으련다.


씻은 우엉과 칼 도마 그릇을 준비하여 텔레비젼 앞에 양반다리로 앉았다.

나는 우엉을 썰 테니 너는 드라마를 하여라.

한석봉 에미 모드로 진지하게 우엉을 또각또각 썰었다.

세 등분하여 둘은 냉동시키고, 한 봉지만 간장에 약하게 조렸다.

컥, 너무 맛있자너? 우엉이 언제부터 이렇게 맛있었지?

사흘 뒤, 얼렸던 두 봉지까지 꺼내어 몽땅 조렸다. (변명: 조렸더니 의외로 양이 많지 않더라고)

앞으로는 맛있네 없네, 좋아하네 아니네, 미리 단정짓지 않기로 한다.


나에게 온 모든 것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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