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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위험한 낙엽

by 愛야 2017. 12. 10.

 

#1

따뜻한 지방이라 좋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 가을이 길게 간다.

나는 어느 지방의 푸짐한 눈 소식이 더이상 부럽지 않게 되었다.

미국의 산불 뉴스처럼 눈 소식도 해마다 T.V 안에서만 만나는 것이었다.

체감되지 않는, 즉 남의 것인데 탐내 봐야 뭐하나.

대신 주어진 기후나 즐기면 될 일이다.

겨울은 겨울이되 살벌하지 않은 겨울이 좋은 나이가 되었다는 말이다.

 

 

낙엽들이 아직 고운 색깔을 가진 채 수북하게 쌓여 있다.

저 핑키한 잎들은 대부분 벚나무인데, 봄에는 꽃으로 황홀하더니 가을 단풍도 곱다.


 

 

 

별 같던 단풍나무 잎들은 지상으로 낙하, 나무 밑둥을 덮었다.

색상 좀 보소.

공원 청소차가 몽땅 쓸어 담기 전까진 아직 가을ing.

 

 

 

 

바로 그때, 덩치 큰 고양이 한 마리가 느릿느릿 단풍나무 잎이 쌓인 길섶으로 갔다.

오, 그래, 너도 낙엽을 밟고 싶었구나.

녀석은 길 아래 비탈로 내려서더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다가갔다.

녀석은 똥을 누고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단풍잎으로 증거물을 덮어 은폐하였다.

참으로 호사스러운 화장실이다.

 

카메라를 들고 있었던 나는 물론 녀석의 결정적 한 방을 확보하였다.

하지만 곧 삭제하였다.

내가 니 똥꼬 찍어 머하겠노, 신고할 것도 아닌데.

착한 내가 참기로 했다.

대신, 절대 낙엽을 한아름 안아 던지거나 엎드려 사진을 찍지 말아야지, 마음을 다졌다.

 

#2

그러나 이미 12월 중순.

마음도 세월도 어쩔 수 없이 겨울로 드는 중이었다....... 버석거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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