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날 며칠 비가 내린다.
비 오는 날씨를 싫어하진 않았는데, 곧 싫어질 것 같다.
#2
장마로 집에 갇혀서 본의 아니게 여기저기 정리를 한다.
오늘은 화장대 속옷 칸을 정리했다.
입었던 기억조차 까마득한 내복과 올인원과 자수 요란한 언더웨어가 아직 있었다.
매끄러운 속치마도 몇 개나 나왔다.
다 버렸다.
이젠 이따위가 필요 없단다.
몇 년 전에는 버리지 않았던 비싼 가방과 옷도 몇 년 지나니 버리게 된다.
마흔에 버리지 못했던 것을 쉰에는 미련 없이 버리고, 쉰에 버리지 않았던 것을 쉰다섯 넘어서는 버렸다.
나는 늘 혹시나를 보관하였다.
#3
졸렬하고 비생산적인 정치인들 입씨름에 기가 막힌다.
정치판은 우물인가, 거기만 들어가면 개구리가 되어 그 명석한 대갈통들도 소용이 없다.
일본이 한국을 드러내고 뭉개는 이 와중에도 우야든동 싸움을...!
국민들 자존심이나 상하게 하니, 어느 편에도 희망적인 구석이 없다.
에잇, 냉장고에서 소주를 가져와 와드득 깐다.
그래 봐야 서너 잔이 맥시멈이지만 저녁 밥맛이 뚝 떨어지니 참 어쩔 도리가 없네.
#4
얼마 전 휴가로 내려왔던 아들이 떨구고 간 드립백 커피를 뜯는다.
봉인되었던 커피가 해제되어 피어오른다.
오, 향기롭다.
삶이 이럴 수만 있다면, 그건 이미 삶이 아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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