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지나간다.
시장 거리에서 나와 큰 찻길 방향으로 간다.
그는 자유롭게 걷는다.
두 손엔 언제나처럼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다.
사자 갈기 같은 긴 봉두난발 덕에 가뜩이나 큰 두상이 더 크다.
어젯밤에는 버스 정류소에 앉아 있는 그를 보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주변에 서서 각자의 휴대폰에 몰두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은 비단 그가 비스듬히 의자 여러 개를 차지하고 앉은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우리 동네 대표 걸인이다.
노숙자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가 진실로 걸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가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없다.
그러나 주변 가게들과 주민들이 그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베풀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는 다른 지역으로 떠나지 않고 언제나 우리 동네에 머물렀다.
내가 기억하는 십 수년간.
며칠 전 밤에는 골목 입구 편의점 앞 테이블에 웬 젊은 아저씨와 마주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자연스러워 마치 원래부터 일행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무려 종이컵과 소주병이 그들의 앞에 놓여있고, 그것을 매개체로 많은 대화를 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보다 맞은편 젊은 아저씨가 더 신기해서 유심히 바라보았다.
혹시 시설에 입소를 권유하러 나온 구청 직원일까.
그게 아니라면, 젊은 아저씨는 갑자기 외로웠던 것임이 분명했다.
작년 겨울 무시무시한 칼바람이 불던 저녁이었다.
공원 걷기를 포기하려고 뭉그적거리다 조금 늦게 나갔다.
@@돼지국밥집 앞을 지나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창문에 그의 봉두난발 큰 머리가 두둥 떠 있었기 때문이다.
믿기 힘들게도 그가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아, 참 다행이구나, 이 칼바람에 실내로 들어갈 수 있어서.
나는 그 순간 @@돼지국밥집 사장님에게 깊이 감동하였다.
저녁 8시 30분경이면 한산할 시간대가 아닌데 걸인을 들여 식탁을 허락한 따뜻한 배포.
그가 국밥을 한 그릇 먹었는지, 아니면 몸만 녹이고 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나는 소심한 결심을 했다.
앞으로 돼지국밥 먹을 때는 저 @@돼지국밥집을 반.드.시. 애용하겠다고.
까마귀 조상 같은 발꿈치를 한 그가 두려워할 겨울이 다가온다.
나는 그와 마주 앉아 술 한잔 하거나, 국밥을 줄 용기는 없다.
그가 정류소 의자에 큰 몸집을 웅크려 누웠을 때 다만 몇천 원이라도 곁에 놓아두어야지 늘 생각했을 뿐이다.
기회를 노렸으나 아직은 찾아오지 않았다.
문득 이런 염려가 든다.
어색하게 내민 푼돈에 그가 버럭 화를 내면 어쩌나.
나 거지 아니요!
이러면서 말이다.
누추하고 자유롭고 당당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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