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래층 아저씨가 상추 봉지를 내밀었을 때, 나는 하마터면 필요 없다고 말할 뻔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상추가 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일 뿐 무례한 거절의 뜻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조금 전 나는 늦은 점심으로 상추쌈을 미어지게 먹었고, 또 먹어내야 하는 상추가 많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듣는 상대방은 불쾌할 것이라는 찰나적 판단으로 나는 공손히 상추를 받았다.
아래층 아저씨는 밭에서 끝물로 따와서 나눈다며 멋쩍게 말했다.
나는 감사한(이런 위선적인!) 표정으로 그러시냐고, 잘 먹겠다며 웃었다.
#2
솔직히 말하면, 반갑지 않았다.
아직 많은 내 냉장고의 상추는?
식구도 없는데, 이렇게 많이...
이따위 배부른 난감함이 스쳤다.
무엇보다도, 상추 봉지를 받아 드는 순간부터 든 생각은, 아 또 뭘로 갚아야 하지였다.
그냥 얻어먹고 있자니 그렇고, 싼 상추 얻고 비싼 과일 보내면 되려 상대방을 미안하게 만들 것 같았다.
미안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딱 상추값만큼의 무엇을 보내는 건 더더욱 재수 없을 것이다.
거의 음식에 무심한 나로서는 이런 경우가 참 난처했다.
시골처럼 숟가락 개수도 공유하는 사이가 아닌 다음에야 요즘 도시인들이 거의 그렇지 않을까.
지나친 친밀이 불편하고, 음식 나눔도 서로 부담이라 안 주고 안 받는, 극히 개인적 일상 말이다.
오며 가며 인사 정도 하면서 이만하면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사회성 낙제의 나를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만, 대체로 그럴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설거지하며 결론을 낸다.
상추는 상추일 뿐, 아이스크림 혹은 참외로 치환시키지 말자.
주는 대로 편히 먹는 것이 저 상추의 덕목일 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김치전이라도 부치는 날에 한 접시 보내면 되겠지 뭐.
자, 이제부터 삼시 세끼 상추로 일주일쯤 먹을 각오나 다지자.
상추쌈, 상추 겉절이, 또 상추쌈, 또 상추 겉절이, 상추쌈쌈쌈 마이 웨이....
#3
늦은 밤 커피를 마신다.
하루의 클로징 의식처럼.
세상 적막한 풍경이 이제는 조금도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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