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2. 월
자려는 내 귀 언저리에서 익숙한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린다.
올해 첫 신상 모기닷!
이 바이러스 와중에 모스키토, 너마저?
따뜻한 남녘이라 출세가 빠르구나.
불행히 지구별은 뿌연 소독약으로 뒤덮여서 아마 활동이 순탄치 않을 것이다.
애꿎은 나의 볼때기를 철썩 갈기고 이불을 뒤집어쓴다.
2020. 3. 10. 화
나는 가족력에 기인한 뿌리 깊은 야행성이다.
요즘은 더욱 증상이 깊어져 자고 깨고 먹는 일에 규칙이나 대중이 없다.
이런 족속들을 위하여 T.V. 에서는 밤새도록 온갖 프로를 재탕 삼탕 해 준다.
더 이상 new 하지 않은 뉴스를 삼세번 넘게, 방송사마다 똑같이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응답하라~' 시리즈는 심야재방의 단골 드라마다.
최소한 5번은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미있다.
그중 '응답하라 1988'이 가장 좋다.
악마만 디테일에 있는 게 아니다.
수준도 디테일에 있다.
시대적 소품과 설정과 옥에 티를 피하기 위해 스텝들이 얼마나 머리 뽀개졌을지 내가 알 필요는 없지만
다만, 진심으로 감탄하면서 웃곤 한다, 매회 매번.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짠내와 가슴 통증을 사이사이 배치해서 눈물도 글썽이게 한다.
한밤중 4시에 홀로 소리 내 아하하 웃다가 스스로 깜짝 놀라기도 한다.
지금은 스타반열에 오른 배우들의 설익은 모습이 신선하다.
그래서 새삼 확인한 것은, 박보검은 결코 '택이'를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
2020. 3. 24. 화
오랜 친구가 아들 보러 부산에 왔다길래 서면에서 만났다.
친구 아들은 싹싹하고 효심이 많아 엄마와 며칠씩이나 자신의 원룸에서 잘 지내곤 한다.
쓰고 보니 이상하다.
그게 당연한 건데, 엄마 올까 봐 손사래 치는 내 아덜놈만 보았더니 친구 아들이 참으로 기특한 것이다.
파스쿠찌에서 커피 마시며 두어 시간 토킹어바웃.
카페를 나와 근처 백화점을 돌다가 휴게 벤치와 커피자판기를 발견하였다.
두 잔 600원을 내가 쏘았는데 의외로 커피가 달지 않고 맛있었다.
우리는 야, 여기 너무 맘에 든다, 다음에 이 자판기 앞에서 만나자 하고 웃었다.
만나는 건 1년 만이지만 수시로 전화로 길게 수다 떠는 터라 어제 본 듯했다.
내일 또 만나 공원에 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지니 어둑어둑해지려는 시각이었다.
바라건대 오늘은 일찍 잠이 들면 좋겠다.
덧붙임: 뒷날 아침 일어나니 허리가 아파 똑바로 설 수 없었다.(뭔 일 했다고?)
친구와의 공원 약속은 펑크, 파스냄새를 벗 삼아 종일 시체놀이 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드디어 나의 주제가로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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