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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러記

봄날의 부스러記 13

by 愛야 2019. 5. 15.

 

 

  2019. 4. 15

왼쪽 팔꿈치 근처가 시큰거리며 아픈 지 몇 달 되었다.

옛날 같으면 벼락처럼 병원으로 달려갔을 테지만 요즘의 나는 병에 대범하다.

음, 아플 때 되니 아프구나, 몸이란 어찌 이리 알람 같은지.....

 

그런데 어제는 제법 욱신거리길래 그만 미련을 접고 오늘 단골 정형외과로 갔다.

관절이 노쇠하여 그러려니 늑장을 부렸던 것인데, 사진을 찍어보니 관절 아닌 인대에 염증이 생겨 부었단다.

어쩐지 가벼운 컵이라도 들어올리면 통증이 오곤 했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인대.

약 1주일 치를 받고 주사나 물리치료 없이 돌아왔다.

원인을 알았으니 곧 낫겠지.

왼쪽 팔을 심하게 쓴 일도 없는데 왜 인대에 탈이 났을까?

 

  2019. 4. 17

k에게서 거의 3년 만에 연락이 왔다.

한가한 내가 전화해야지 하면서 세월이 그리 흘렀다.

그녀는 외손녀들을 돌보느라 바쁘지만, 여전히 수영을 하고 중국어도 배우러 다닌다.

백만 년 만의 소식을 폭풍처럼 주고받으며 우리는 어제 본 듯 아무렇지도 않다. 

그녀와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으니까 쿵 하면 짝이다.

우리는 1시간쯤 떠들다가, 시간 내서 얼굴이나 함 보자, 이러면서 기쁜 목소리로 끊었다.

전화로 이야기 다 했으면서 아직 할 말이 남았어?

그럼 그럼, 남았고말고.

 

  2019. 4. 29

약을 2주일째 먹고 있건만, 팔꿈치는 너 약 먹냐 아는 체도 하지 않는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딱 같은 상태.

지난주 의사에게 말하니 살짝 눈을 내리깔며 삐친 표정이라  "아무 효과 없는디요?" 하기 그렇다.

약 먹는데도 이토록 표 없기는 또 첨일세.

 

어제는 친정에 다녀왔다.

다음 주 연휴에(어버이날 며칠 당겨서) 가겠다고 하니 아부지는 아이 내려올 땐 에미가 집에 있어라며 이번 주 오라 하셨다.

다 큰 녀석 업고 있을 것도 아닌데 에미가 뭐 필요하다고.

아부지는 내가 들어가 기척을 해도 모르고 까부라져 주무시고 계셨다.

하긴, 구순이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처럼 죄책감과 두려움에 우울하였다.

 

  2019. 5. 6

연휴에 아이가 내려왔다.

아들을 보는 순간 나는 기함을 하였다.

생애 첫 파마를 하필 왜 첫 직장에 들어가자마자 하냐고오오오!!

게다가 머리가 길어서 너덜너덜, 완전 폭탄이었다.

내가, "야, 너 가시면류관을 쓴 듯하다!" 했더니 아들도 픽 웃었다.

아침에 손질하여 출근해도 종일 바쁘다 보면 지맘대로 꼬부라지는 게 파마머리인데, 흑흑 이 모친 돌아버릴 뻔했다.

용모나 복장에 대한 지적질을 안 하는 요즘 직장문화에 저 꼬락서니를 봐야 하는 직장 상사에게 심심한 사과를!

살짝 커트하라고 몇 번을 좋게 말해도 요지부동이라 내가 마 포기했다.

길면 자르겠지 설마 상투야 틀겠나.

 

온 김에 여름 양복 두 벌 사 들고 갔다.

보내고도 나는 정말 마음이 심란하다.

머리카락에 껌이라도 붙이고 싶었으나 그래도 안 자르고 붙인 채로 출근할까 무서워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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