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28. 목.
2달에 걸친 아들의 연수가 끝나는 날이다.
오후 늦게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서울 발령."
아니 바로 서울?
어떻게, 어떻게 하지?
수습 몇 개월은 연고지에서 근무할 줄 알았는데, 그래서 당장 떠나는 건 아닐 거라 여겼다.
왈칵 울음이 났다.
눈부신 햇살 님에게는 울지 말라고 해 놓고 나는 울었다.
그것도 많이, 큰 소리로.
ktx로 아들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다 울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짐 꾸릴 걱정만 하는 척했다.
2019. 3. 2. 토.
밤늦게 셔츠 다림질을 하고, 아이와 함께 캐리어를 꾸렸다.
슈트 2벌과 셔츠 여러 벌, 세면도구, 기타 등등을 넣었을 뿐인데 큰 캐리어가 꽉 차서 너무 무겁다.
나머지 필요한 것은 가서 사라고 신용카드 한 장을 주었다.
아직 녀석에게 충분한 돈이 없을 것이다.
있다 하여도 내가 해 주고 싶었다.
새끼 돈 벌게 하려니 내 돈이 거품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2019. 3. 3. 일.
기차 시간이 아침 7시 50분이라 꽤 일렀다.
택시 타는 곳까지만 같이 가기로 했다.
아이는 택시 문을 닫으며 크게 소리쳤다, 울지 말고 있어~!
쳇, 나를 뭘로 보고.
짐을 꾸려 아이를 보내는 것이 물론 처음은 아니다.
대학 입학, 군대, 다시 복학.
하지만 그때는 목적에 의한 한시적인 이별이었다.
공부를, 군 복무를, 다 마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
이번은 다르다.
제가 뿌리 내려 살 곳으로 영영 보낸 것이다.
비로소 진정한 탯줄을 자른 듯,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었다.
인생의 당연한 과정임을 어찌 모르겠냐만, 안다는 것은 뻔한 원론이고 슬픔은 본능이었다.
아이를 배웅하고 돌아와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떠나지 않으면 그게 더더 큰일이지.... 참 감사하구나.
야! 나 안 울어!
2019. 3. 7. 목
'영화의 전당'에서 아카데미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집 근처 예술영화관이 없어지고 난 후 영화를 참 안 봤다.
'그린북'을 보기로 하고 집을 나와 총총 걷다가
"아차, 안경을 안 가꼬 왔다."
오랜만의 영화를 셀프 뽀사시로 보게 생겼다.
영화는 매우 좋았다.
남주인공 비고 모텐슨의 과한 복부와 상체 때문에 숨이 턱 막히곤 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온 센텀시티의 밤거리는 찬란하다 못해 어지러웠다.
날씨는 따뜻했다.
나는 근처 한샘플라자에 가서 난데없이 포트메리언 접시를 두 장 샀다.
꽃무늬 그릇을 극히 싫어하면서 글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허하면 냄비나 그릇 따위를 사는 습성이 있는데,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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