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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러記

부스러記 12, 훗날에도 기억날까

by 愛야 2019. 3. 11.

 

2019. 2. 28. 목.

2달에 걸친 아들의 연수가 끝나는 날이다.

오후 늦게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서울 발령."

아니 바로 서울?

어떻게, 어떻게 하지?

수습 몇 개월은 연고지에서 근무할 줄 알았는데, 그래서 당장 떠나는 건 아닐 거라 여겼다.

왈칵 울음이 났다.

눈부신 햇살 님에게는 울지 말라고 해 놓고 나는 울었다.

그것도 많이, 큰 소리로.

ktx로 아들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다 울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짐 꾸릴 걱정만 하는 척했다.


2019. 3. 2. 토.

밤늦게 셔츠 다림질을 하고, 아이와 함께 캐리어를 꾸렸다.

슈트 2벌과 셔츠 여러 벌, 세면도구, 기타 등등을 넣었을 뿐인데 큰 캐리어가 꽉 차서 너무 무겁다.

나머지 필요한 것은 가서 사라고 신용카드 한 장을 주었다.

아직 녀석에게 충분한 돈이 없을 것이다.

있다 하여도 내가 해 주고 싶었다.

새끼 돈 벌게 하려니 내 돈이 거품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2019. 3. 3. 일.

기차 시간이 아침 7시 50분이라 꽤 일렀다.

택시 타는 곳까지만 같이 가기로 했다.

아이는 택시 문을 닫으며 크게 소리쳤다, 울지 말고 있어~!

쳇, 나를 뭘로 보고.

 

짐을 꾸려 아이를 보내는 것이 물론 처음은 아니다.

대학 입학, 군대, 다시 복학.

하지만 그때는 목적에 의한 한시적인 이별이었다.

공부를, 군 복무를, 다 마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

이번은 다르다.

제가 뿌리 내려 살 곳으로 영영 보낸 것이다.

비로소 진정한 탯줄을 자른 듯,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었다.

인생의 당연한 과정임을 어찌 모르겠냐만, 안다는 것은 뻔한 원론이고 슬픔은 본능이었다.

 

아이를 배웅하고 돌아와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떠나지 않으면 그게 더더 큰일이지.... 참 감사하구나.

야! 나 안 울어!

 

2019. 3. 7. 목

'영화의 전당'에서 아카데미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집 근처 예술영화관이 없어지고 난 후 영화를 참 안 봤다.

'그린북'을 보기로 하고 집을 나와 총총 걷다가

"아차, 안경을 안 가꼬 왔다."

오랜만의 영화를 셀프 뽀사시로 보게 생겼다.

영화는 매우 좋았다.

남주인공 비고 모텐슨의 과한 복부와 상체 때문에 숨이 턱 막히곤 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온 센텀시티의 밤거리는 찬란하다 못해 어지러웠다.

날씨는 따뜻했다.

나는 근처 한샘플라자에 가서 난데없이 포트메리언 접시를 두 장 샀다.

꽃무늬 그릇을 극히 싫어하면서 글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허하면 냄비나 그릇 따위를 사는 습성이 있는데,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그린북/CGV아트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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