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따뜻하고 비도 그쳤습니다.
카메라를 챙겨 오후에 공원으로 갔습니다.
3월 들어 내내 바람 불고 춥고를 반복했건만
기특하게 목련이 피어나고
오래된 분홍동백도 그자리에서 여전합니다.
늙어서 그런지 조금 누추해졌군요.
공원에는 삼삼오오 노인들이 가득합니다.
한낮에 갈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미래엔 더 할 것입니다.
열에 아홉은 어두운 패딩 재킷을 입었습니다.
컴컴한 그들의 무리가 너무 암담해 보여 홱 눈길을 돌렸습니다.
돌아오는 길 아파트 입구에서
젊은 부부와 세 살쯤의 꼬맹이 둘이 막 차에서 내립니다.
아이들은 혹시 내가 못 들을세라 목청 높혀 뒷통수에 대고 인사합니다.
함머니 안녕하세요오!
엄마가 황급히 아가들을 제지합니다.
야야, 우리 할머니 아니야~.
나는 무심하게 응, 그래, 안녕? 대답하며 지나칩니다.
흠....
'할머니'가 아닌 게 아니라 '우리' 할머니가 아니라는 게지요.
가족관계 안에서 할머니라고 불리는 일이 아직 없다 보니 깜짝 놀라긴 했습니다.
하지만 마스크를 꿰뚫는 아이들의 눈을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예리한 녀석들.
나의 내면은 나만 들여다본다 쳐도
나의 이미지는 남의 눈이 답니다.
내 눈에 보이는 그들처럼
그들 눈에 보이는 나도 다를 바 없지요.
시간의 권력 앞엔 무력할 밖에 없으니까요.
다음 공원에 갈 때는 밝고 고운 옷을 입을까 합니다.
봄꽃만 하겠습니까만, 누군가의 눈에 암담하게 보이긴 싫으니
아무도 속지 않을 사기라도 쳐 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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