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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러記

부스러記 22, 새로울 것 하나 없어도

by 愛야 2022. 4. 27.

2022. 1. 1. 토
한쪽 눈 깜빡하는 사이 한 해가 지나가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마침 토요일이라 아들이 오후에 내려왔다.
며칠 후 내 생일이어서 겸사 그러는 모양인데, 좀 있다 설에 오라고 했으나 본인 뜻대로 기어이 왔다.
저녁에는 나가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나는 외식 싫으니 집밥 먹자고 했지만, 그것도 아들은 본인 뜻대로 했다.
아이에게 이기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2022. 1. 19. 수
그동안 단발 상고머리 스타일로 지내다가 오늘 짧게 커트를 하였다.
이 추위에, 덮었던 순모(純毛)마저 걷어내니 머리 부분이 졸지에 너무 썰렁하다.
머리카락을 짧게 한 이유는 염색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3개월 전의 염색이 내 인생 마지막 염색이 되었다.
염색 된 머리카락을 빨리 빼내는 방법은 짧게 커트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검은, 흰, 회색이 뒤섞인 어수선한 머리는 길면 길수록 더 지저분하게 보였다.
더구나 이 바람 많은 도시에서 살아가기엔.

염색을 영원히 멈춘 나는 어쩐지 슬프다.
무기력하고 어색하다.
여기까지가 끝이야?
이게 다였어?

2022. 2. 2. 수
설에 내려온 아들은 상경 열차표를 구하지 못해 내내 앱을 들여다보더니 어찌어찌 하나 찜해서 올라갔다.
이번 설은 앞 휴일이 길고 뒷 휴일이 짧아서 더 그렇다.
차를 몰고 6시간 고속도로에서 고생하기 싫으면 ktx 예매를 하든가, 준비성 없는 녀석에게 잔소리했다.
계속 새로고침 하다 보면 표가 어떻게든 구해지니까 그걸 믿고 저런다.
참 나와 다르다.
나라면 예매지정 날짜에 피나게 동그라미 쳐 두었다가 새벽같이 일어나 예매했을 것인데.

2022. 2. 18. 금
아버지 92회 생신이다.
어제 전화드리니, 지금은 오지 말고 더 있다 봄에 오라고 하신다.
두 분 다 코로나 백신을 안 맞은 터라 우리 마음만 고집할 수 없다.
알겠다고, 오라 하실 때 갈 테니 전화 주셔라 하며 끊었다.
서로 덤덤하다.

원래도 아버지는 생신과 기념일은 번잡해서 엄마 컨디션을 흔든다고 싫어하셨다.
엄마가 유동식만 드시게 된 이후 아버지는 당신의 생일상도 거부하셨다.
이제 생일이나 어버이날의 행사가 당신들께 아무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하루하루의 생존과 무사함이 더 중요하고, 세상의 스케줄에 맞추어 쳐들어오는 자손들조차 버거울 뿐이다.
그래도 가 뵙지, 행여 마지막 생신이면 어쩌려고, 이런 염려는 '남을 자'가 자책을 면해보려는 보험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아버지 의사에 반대의 토를 달지 않게 되었다.
네에, 당신 뜻대로, 편하신 대로 하소서~.
봄에 오라 하시니 봄에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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