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커피를 마시지만, 저녁식사 후엔 되도록 커피 아닌 茶를 마시려고 한다.
일찍 어두워지는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나도 덩달아 저녁밥을 일찍 먹었다.
시각에 따르지 않고, 날이 어두워지면 밤이고 환하면 낮인 원시인처럼.
밤 9시쯤 되니 이른 저녁밥으로 더부룩하던 속이 꺼지고 그 자리에 빈 공간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저녁밥 이후로는 뭘 먹는 습관이 아닌지라 고작 茶를 한 잔 마실 뿐이다.
茶가 우려지는 동안 멍하게 찻잔을 바라본다.
아 맛있는 색깔이다, 혹은 내 집은 언제나 조용하구나, 고작 이런 따위의 상념.
생각해 보면 평생을 고독한 사람인데, 새삼스러운 자각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아들이 보내준 MBTI 유형을 해 보니, 나는 '용감한 수호자'였다.
다소 애매했던 답변을 과감하게 다시 체크해 봐도 유형이 바뀌지 않으니 그게 진짜 내 모습인가.
유형 설명을 보면 실제의 나와 다른 점이 많지만, 재미로 보는 통계라며 웃고 말았다.
아들은 의외로, '모험을 즐기는 사업가'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낳고 키운 내가 전혀 예상 못한 성격을 이 아이는 가진 것일까?
그래서 아들에게, 로또가 당첨되어도 너에게 절대 알리지 않고 내가 다 갖겠다고 선언했다.
설문 중에, 공간 어느 위치의 자리에 주로 앉느냐 묻는 문항이 있었다.
나는 늘 가장자리다.
앞자리도 아니고 가운데는 절대 아니고, 가장자리나 벽쪽 이를테면 변두리에 앉아야 마음이 편안했다.
나는 비겁한 성격인가?
주목받기보다 주목하기 좋은 가장자리형 인간. (애석하게도 그런 유형은 분류에 없었다)
하지만, '용감한 수호자'인 나는 아무것도 수호하지 않기 위해 이 집의 고적함조차 즐기는 셈이다.
6월이 끝났다.
순식간에 한 해의 반이 스러지고, 여름은 늘 힘들다.
따뜻한 茶를 마시는 동안, 나는 조금 용감해져야 삶이 풍요로울 것인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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